서울 영등포경찰서 과학수사요원들이 지난달 26일 오전 국회 사무처의 수사 의뢰에 따라 국회의장이 사용하는 본회의장 출입문에 대한 지문감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뉴스 쏙] 민주당 ‘본회의장 잠입’의 진실
‘산타클로스’는 지문을 남겼을까.
민주당이 지난달 26일 본회의장 점거농성에 들어간 직후, 국회 사무처는 주저없이 범죄신고 ‘112’ 번호를 눌렀다. 그러자 서울 영등포경찰서 지능3팀이 나와 국회부의장실 앞 본회의장 출입구 문고리에 가루를 뿌려가며 지문을 채취하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사무처는 열쇠전문가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문을 땄을 가능성 등을 언급했지만, 민주당은 의원을 범죄인 취급하며 경찰을 국회까지 부른 사무처의 월권행위를 질타했다. 당시 민주당은 “본회의장엔 산타클로스가 안내한 길로 들어갔다”고만 말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났으나, ‘산타클로스 지문’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영등포경찰서 지능3팀은 지문채취 결과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 정치적 문제도 걸려 있어 얘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사를 의뢰한 국회 사무처 관계자도 “경찰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은 것이 없다”고 답했다. 국회 경위들이 속한 의사국 쪽도 “지문 채취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과학수사까지 동원한 부산을 떨었으나 이 사람, 저 사람 지문이 무질서하게 찍혀 있어 산타클로스를 가려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산타클로스뿐 아니라 ‘루돌프’의 발자국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느긋한 표정이다. 금고 털듯 닫힌 문을 몰래 연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하늘의 도움이 있었다. 본회의장 점거를 결정한 후 본회의장 출입구를 전부 조사했는데, 24일 밤 문희상 국회부의장실 앞 본회의장 출입구가 열려 있었다. 출입구마다 문고리를 흔들어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눈으로만 보고 지나쳤다면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사실이 지도부에 보고됐고, 평소 강경발언을 하던 이종걸 의원과, 원내부대표 중 막내인 이춘석 의원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하면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 두 사람을 미리 본회의장에 투입시켰다”고 전했다. 25일엔 해병대 중위 출신 신학용 의원과 육군 대위 출신 김재균 의원 등 ‘은폐·엄폐’에 능한 두 의원이 교대조로 밤을 새운 뒤 26일 아침 동료의원들이 들어올 시간에 맞춰 문을 열어줬다. 민주당은 “사무처 중 누군가 문책을 받을 수 있어 이 사실을 즉각 알리지 못했던 것”이라 했고, 사무처는 “이와 관련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본회의장 진입을 놓고 민주당과 사무처가 으르렁대면서도, 민주당 의원들의 요청에 따라 사무처가 농성 침구세트는 제공했다는 점이다. 국회 관리과는 “본청 151호실에 숙직자를 위한 침구세트가 있는데, 사무처 허락으로 베개만 빼고, 이불과 매트리스를 본회의장에 넣어줬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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