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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의 사랑방 ‘펍’ 30년 안에 멸종?

등록 2009-03-26 19:12수정 2009-03-27 18:18

영국의 선술집 펍은 영국 서민들의 안식처이자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공론의 장이다. 최근 영국의 음주 문화가 바뀌면서 영국 문화의 상징으로 꼽혀온 펍이 30년 안에 사라질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한겨레> 자료사진
영국의 선술집 펍은 영국 서민들의 안식처이자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공론의 장이다. 최근 영국의 음주 문화가 바뀌면서 영국 문화의 상징으로 꼽혀온 펍이 30년 안에 사라질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한겨레> 자료사진
[뉴스 쏙]




맥주값 자율화로 몰락 가속
최근엔 매주 39곳 간판 내려

영국펍협회 비관적 보고서에
애호가들 “구제금융” 주장도

“라스트 오더!(Last Order!)”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지구가 곧 폭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영국인 아서 덴트는 황급히 펍(Pub)으로 달려가 맥주 한 잔을 들이켠다. 펍 주인은 종을 치며 ‘라스트 오더’를 외친다. ‘마지막 맥주 주문’을 받는 것이다.

영국 서민들의 안식처로 사랑받아온 선술집 ‘펍’이 30년 안에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영국 맥주 및 펍 협회(BBPA)는 최근 2037년 6월 어느 날 저녁 영국의 마지막 펍에서 마지막 맥주 주문을 할 것이라고 보고서를 냈다. 요즘 영국에서 매주 39곳의 펍이 문을 닫는 추세를 고려한 예측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맥주 판매량 감소가 1930년대 대공황 때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영화와 달리 지구는 안전한데 펍만 종말 선고를 받은 셈이다. 과연 영국 서민문화의 상징이 사라지는 걸까?

■ 로마시대에 등장한 영국의 ‘사랑방’ 펍은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술집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영국에선 6만1천여곳의 펍들이 성업했다. 펍의 본명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로, ‘공공장소’란 뜻이었다. 마을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정치토론을 벌이던 장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영국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가 출발하는 곳’이자 ‘도시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오락 공간’이기도 하다. 영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보려면 펍을 찾아가라고 할 정도다.

이 영국식 선술집은 로마시대에 생긴 숙박 겸용 술집이 시초로 추정된다. 펍이 점차 늘어나자, 10세기 말 영국의 에드거 왕은 한 마을에 술집 하나씩만 두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다. 자칫 반역 모의가 일어날까 두려워한 탓이다.


면허를 갖춘 첫 번째 펍은 1552년에 등장했다. 18세기에는 ‘퍼블릭 하우스’가 사전에 올랐을 만큼 권위(?)를 부여받았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펍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다. 당시만 해도 남자들만 출입할 수 있었고, 귀족 전용 공간이 따로 있었다. 아직도 상당수 펍들이 이 시절 실내 장식을 유지하고 있다.

맥주 소비가 정점에 이른 1870년대 중반에는 영국인 1인당 연간 맥주 1302ℓ를 마셨다는 통계가 있다. 이 시기 산업혁명으로 도시노동자들이 출현하면서 펍도 크게 번성했다. 이들에게 펍 문화는 단조롭고 힘겨운 노동의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기는 안식처였다.

■ ‘영국 펍’도 구제금융하라 펍이 쇠락하는 조짐은 2000년대 초부터 뚜렷해졌다. 펍이 금연 공간으로 지정되고 음주운전 단속이 강화되면서 주당들의 발길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파는 값싼 맥주를 사서 집에서 마시는 이들도 늘었다. 젊은층들은 현대적인 음주공간인 ‘바’(Bar)를 더 선호하고, 회원제 클럽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펍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일부에선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시절부터 펍의 위기가 예고됐다고도 분석한다.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든 대처 전 총리가 맥주 가격을 자율화해 경쟁이 격화된 것이 펍의 몰락을 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펍이 퇴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영국의 극심한 경기침체 때문이다. 불황으로 주류 소비가 줄어든 것이다. 런던의 금융 중심부인 시티의 몰락은 이를 더 부추겼다.

펍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란 소식은 영국의 펍 애호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역사학자인 트리스트럼 헌트는 16일 <더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어디에서 술을 마실 것인가’는 ‘얼마나 많이 마실 것이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며 ‘펍의 부흥’을 역설했다.

은행을 구제하듯 펍에도 ‘구제금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은행과 자동차 산업을 살리는 데는 팔을 걷어붙이면서 영국 사회를 응집시켜 온 엔진이랄 수 있는 펍에 대해선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펍들도 자구책을 펴고 있다. 테이블보를 펼친 식탁에 고급요리 메뉴를 강화하는 펍도 있고, 아침식사를 팔거나 우편업무를 대행해주는 펍도 늘어나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조지 오웰은 이상적 펍의 10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주당들의 유토피아를 꿈꿨다. 이런 영국인들의 오랜 ‘펍’ 사랑은 영국 전역에서 전통 맥주와 펍을 살리려는 다양한 캠페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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