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먹거리 ‘불신지옥’…구원과 죽음 사이

등록 2009-08-13 19:23수정 2009-08-14 14:36

먹거리 ‘불신지옥’…구원과 죽음 사이.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먹거리 ‘불신지옥’…구원과 죽음 사이.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뉴스 쏙] ‘불량식품’ 파동 겪은 기업 흥망성쇠기
쥐우깡 쓰레기만두 우지라면…
불량식품 오명에 기업신뢰 흔들
판결 전 여론재판서 생사 갈려

재료값 인하 등 호재잡은 농심
시스템 바꿔가며 1년만에 재기
영세업체는 ‘파렴치 낙인’ 도산

딱 1년이었다. 위기에 빠진 라면과 스낵의 황제 농심이 다시 일어서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온 국민의 간식으로 사랑받아온 장수 인기상품 새우깡에서 쥐 머리가 나왔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소비자들의 경악과 분노는 그 어떤 제품 이상으로 크고 깊었다. 새우깡은 ‘쥐우깡’으로 불렸고, 소비자들은 오랜 시간 정든 새우깡을 손에서 놓았다. 설상가상으로 농심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번졌다. 촛불시위가 번지면서 불신이 깊어진 이른바 ‘조·중·동’ 신문에 농심이 광고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더구나 새우깡과 함께 농심의 양대 간판 장수상품이고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신라면에서도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신고가 당국에 접수됐다. 업계 절대 강자 자리를 독점해온 농심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식품업은 신뢰성이 생명이다. 이 신뢰성은 만들기는 어려운데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부정적인 사안이 발생하면 식품 기업은 치명상을 맞기 마련이다. 법적인 공방 끝에 무죄 판결이 나와도 소용없는 것이 식품 문제에 대한 여론 심판이다. 문제 발생 소식과 동시에 소비자들은 충격 속에 마음을 닫아버린다. 식품업체들이 극복하기 가장 어려운 위기가 바로 고개 돌린 여론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이를 성공하면 살아남지만 때를 놓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대신 여론은 초기에 잘 진화만 하면 ‘냄비’처럼 금방 식는 점도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던 농심은 1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쓰레기 만두’, ‘포르말린 통조림’, ‘기생충알 김치’들이 그토록 그리다 끝내 넘지 못했던 그 난관을 신라면과 새우깡이 넘어선 것이다.

쥐우깡 파문 1년 만에 사르르~

지난해 3월17일은 농심한텐 재앙의 날이었다. 충북 청원군의 한 소비자가 노래방 새우깡에서 이물질을 발견했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신고했고, 식약청은 이 이물질이 생쥐 머리로 추정된다고 판정했다. 그리고 “불순물 거름장치가 미세한 이물질은 잘 걸러내는 반면 오히려 큰 이물질에는 취약한 점이 있다”며 시설 개선 명령을 내렸다. 순식간에 농심 과자 매출은 30~40% 줄어들었다.

불매운동도 심각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들불처럼 번지면서, 왜곡 언론으로 낙인찍힌 조선일보에 농심이 광고를 하면서 사달이 났다. 촛불시민들은 농심 불매운동과 함께 경쟁사인 삼양식품의 라면과 주식 사기 운동을 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라면도 바퀴벌레 파문에 휩싸였다. 농심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라면의 시장 점유율이 유례없이 떨어졌다. 농심은 10년 넘게 라면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해왔는데, 신라면이 흔들리면서 70% 아래로 처음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금은? 농심은 올해 2분기 모든 악재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 2분기 농심은 라면을 비롯한 과자, 음료 등 전 부문에서 고르게 매출이 늘어나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0.6%, 193.4% 증가했다. 라면 시장 점유율도 70%대로 다시 돌아온 것은 물론이다. 마침 원재료 가격도 내려갈 전망이어서 향후 이익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탈출 1등 공신은 ‘하늘이 내린 운’

농심은 어떻게 쥐우깡 파동과 불매운동 위기를 벗어났을까? 가장 큰 공신은 ‘운’으로 평가받는다. 빨리 달아올랐다가 쉽게 잊는 소비자들의 특성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후 경기 상황이 농심에겐 행운이었다. 경기가 나빠진 게 농심을 도운 것이다. 라면은 소득이 줄면 수요가 늘어나는 대표적인 열등재다. 올 2분기에만 라면 매출액이 13% 가까이 급증했다. 다른 라면회사들 역시 4~5% 이상 늘었는데 농심은 더욱 늘어난 것이다.

원자재 가격도 하락했다. 라면이나 과자 원료인 소맥 값은 연초 대비 4% 정도 하락했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무려 40% 정도나 싸졌다. 팜유 가격도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떨어졌고, 포장재 가격도 떨어져 수익성이 높아졌다.

혼란한 정국도 농심에는 천우신조였다. 쥐머리 새우깡과 불매운동에 대한 관심이 국민들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기 어려울 정도로 이후 온갖 논란이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다. 부자 감세 논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촛불 집회 정국에 미디어법 강행 통과 등 굵직한 이슈들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을 정신없게 했다. 연예인 스타 자살 사건들에 베이징 올림픽 열풍,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이 계속 등장했다.

농심 스스로도 보수적인 경영에 변화를 꾀하며 조용히 문제 해결에 나섰다. 4~6단계에 이르던 의사결정 단계를 2단계로 축소하는 한편 조직 개편에 나섰다. 제품 광고만 해오다가 처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기업이미지 광고도 했다. 농심 고위 관계자는 “지난 1년간 고객 안심 프로젝트, 종합방제 시스템 등을 시행하고 식품안전 자문단, 내부 전문가 육성 관리 등을 운영하는 한편 고객 클레임 해결에 기존 24시간 내 대응을 4시간으로 줄여 2012년까지 고객 클레임 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개는 1년 안에 사망선고

식품업계에서 농심 같은 경우는 아주 운 좋은 예외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다른 업체들은 대부분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고 오랜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지 라면 파동’을 겪은 삼양식품이다. 1963년 국내 최초로 라면을 출시한 삼양식품은 이후 60%가 넘는 시장 점유율로 라면 업계 1위를 지켜왔다. 그런데 1989년 공업용 소뼈로 만든 기름을 라면에 썼다는 투서가 검찰에 날아들어 수사가 시작되면서 삼양식품은 씻기 어려운 오명을 뒤집어썼다. 사건 발생 13일 만에 보건사회부 장관이 나서 “인체에는 해가 없다”고 판정을 내렸지만 신문과 방송의 연일 맹폭으로 삼양식품은 삽시간에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서울 도봉동 공장이 3개월간 문을 닫았고 시장 점유율은 10%대로 곤두박칠쳤다.

무엇보다 당시 노태우 정권의 정치 헌금 요구를 거절한 데 따른 보복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농심의 쥐머리 새우깡은 비위생적 식품 제조 과정을 추정할 만한 근거 수준이지만, 우지라면은 직접적인 유해성 시비를 걸 만한 것이었다. 재판부가 여러 차례 교체되며 판결이 늦춰진 것도 정치적 이유로 해석된다. 결국 삼양식품은 8년 가까운 법정 싸움 끝에 1996년 무죄 판결을 받아냈지만, 과거의 명성은 되돌릴 수 없었다. 삼양식품은 이후 10여년째 라면 시장 점유율 12~15% 정도에 머물러 있다.

삼양은 비록 최악의 불운을 겪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축이다. 중소 식품업체들은 한번 사고를 겪으면 거의 대부분 망해버리기 십상이다. 쓰레기 만두, 포르말린 통조림, 기생충알 김치 등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식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중소기업들은 줄도산했다. 1998년 일어났던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 당시 검찰은 3개 식품회사가 번데기와 골뱅이 등을 포르말린으로 썩지 않게 방부처리해 통조림으로 만들어 팔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1년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는 모두 무죄 선고를 받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TO)가 자연 상태의 어류와 채소 등에서 상당량의 포르말린이 검출된다고 조사한 보고서가 알려지면서다. 그러나 그사이 해당 회사들은 이미 모두 도산한 뒤였다.

‘쓰레기’가 아니었던 쓰레기 만두 사건

2004년은 쓰레기 만두 파동으로 떠들썩했다. 경찰은 2004년 6월 씨제이를 포함해 25개 식품회사에서 불량 재료를 만두소로 사용한 만두를 만들어 팔았다고 발표했고, 식약청은 해당 기업 리스트를 공개했다. 당시 소규모 만두제조사를 운영한 신아무개 사장이 “쓰레기 만두라는 오명을 벗겨달라. 불량 만두 파동은 정부와 대기업, 제조업체의 공동 책임인데 제조사에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유서를 남기고 반포대교에서 투신 자살하기도 했다. 실제 형사처벌 과정에서는 만두소 공급업자 2명만 불구속 기소돼 2005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뿐이지만, 업체들은 이미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이를 이겨내지 못한 중소규모 업체들은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억울하게 명단에 올라간 물만두 전문업체 취영루는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6개월여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당국의 실수로 쓰레기 만두 리스트에 올랐다가 무혐의 업체로 밝혀졌지만 제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거래 업체들로부터 반품이 쇄도했다.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춘 파주 공장은 석달이나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비용 절감을 해가면서 꿋꿋이 버틴 끝에 6개월여 만인 연말 매출액 90% 정도를 회복했다.

대기업들은 쓰레기 만두 파동이 발생한 직후 3~4개월 동안 절치부심의 기회로 삼기도 했다. 업계 1위인 씨제이는 판매 공백기 동안 재료 일부를 중국산에서 국산으로 교체하고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군소업체에 하청생산을 맡기던 것은 직접 생산하는 체제로 돌렸다. 해태제과, 삼포, 동원, 풀무원 등도 자사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비율을 늘려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전략에 힘을 기울였다. 덕분에 냉동만두 시장 규모는 2004년 1500억원으로 30% 이상 급감했다가 2005년 2000억원을 회복한 데 이어 2006년 2200억원으로 파동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