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
엘지 트윈스 외국인 선수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타석에 들어서면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된다. 수비수들이 오른쪽으로 치우친 수비 대형을 선보이는 것이다. 1루수는 파울라인 쪽에 붙고, 2루수는 1루로 향하면서 오른쪽 외야로 살짝 물러나 있다. 유격수는 2루 베이스 근처에, 3루수는 원래 유격수 자리에 서 있다. 일명 ‘페타지니 시프트’, 곧 1940년대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 때부터 시작된 ‘오버시프트’다.
수비수들은 그라운드에서 한 곳에만 서 있지 않는다. 투수가 던질 다음 공, 타자의 일반적 성향 등에 따라 전후좌우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타구를 기다린다. 지난해 플레이오프 때, ‘타격기계’ 김현수(두산)의 방망이를 무디게 만든 것은 삼성 유격수 박진만의 2루수 쪽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였다. 2005년 플레이오프 때 한화도 1루수와 우익수 가운데에 서 있던 2루수 한상훈이 여러 차례 김재현(SK)의 안타성 타구를 걷어내면서 재미를 봤다. 시프트는 최선의 방어가 아닌, 수비하는 쪽이 택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인 셈이다.
오버시프트는 왼손 슬러거를 상대로 많이 나온다. 페타지니 이전에 카림 가르시아(롯데)도 상대 오버시프트에 철저히 당했다. 배리 본즈, 제이슨 지암비, 카를로스 델가도, 트레비스 하프너, 짐 토미 등 메이저리그 강타자들도 극단적 수비 포메이션에 걸려 허탈하게 덕아웃으로 들어가곤 했다.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이나 추신수(클리블랜드)가 타석에 들어설 때도 수비수들은 ‘우향우’를 한다. 이들은 모두 타석에서 잡아당기기를 좋아하는 왼손 타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버시프트를 깨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비수가 비어 있는 3루로 공을 굴리는 것. 지난 18일(한국시각) 오클랜드 왼손 타자 잭 커스트는 6회 타석에서 엘에이 다저스 수비수들이 오버시프트를 선보이자, 수비가 없는 3루 쪽으로 번트를 대 상대의 허를 찔렀다. 오버시프트에 대응하는 또다른 방법은 정면승부. 더 강한 타구를 날려 오버시프트를 깨는 것이다. 자존심 강한 왼손 슬러거들은 대부분 후자를 택하곤 한다.
시프트는 막느냐, 뚫느냐의 싸움이다. 3차례 타석에 서서 한 차례라도 안타를 치면 훌륭한 타자라고 하듯이, 안타 3개 중 단 하나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만큼 훌륭한 수비작전이 어디 있겠는가.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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