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지난 3일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은 아주 추웠다. 아침만 해도 햇살이 화창해서 그럭저럭 버틸 만했지만 정오가 지나자 눈발이 날리면서 체감온도는 영하 10도까지 뚝 떨어졌다. 김성근 감독은 운동장 한편에 서 있었다. 한 선수를 붙잡고 열심히 투구폼을 수정중이었다. 위에 걸친 옷이라고는 후드티 하나뿐. 연방 하얀 입김을 쏟아내면서도 김 감독은 멈추지 않았다. 실내에 앉아 창문 너머의 노감독을 바라보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1시간 전, 김 감독은 양쪽 어깨를 주무르면서 “수술하지 못한 왼쪽 팔도 아프고, 이젠 오른쪽 팔도 아파온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무엇이 칠순의 노감독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김 감독은 “선수들의 기본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일부 선수는 프로야구까지 거쳤는데 야구 기본기가 없을까. 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선수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선수들은 기본기가 갖춰지기도 전에 실전 경기에 내몰린다. 그러다보니 기본기는 없고 ‘경기에 뛰기 위한 선수들’로 키워진다. 수도권의 한 투수 코치는 “프로 지명된 선수가 변화구 기본 그립을 어떻게 잡는지조차 모른다”며 혀를 차곤 했다. 프로야구 무대를 꿈꾸는 40여명 선수들을 가르치는 고양 원더스 코칭스태프는 감독을 포함해 7명. 김 감독은 “내가 10인분을 하면 된다”고 했다.
이런 김 감독을 두고 일부에서는 노욕을 부린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동의하기 어렵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김 감독의 프로정신이 번뜩하기 때문이다. 설령 노욕이라고 해도, 그것을 최고를 추구하는 장인정신의 한 단면으로 볼 여지는 많다.
스파르타식 훈련도 자율을 추구하는 현대 기조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훈련량만 본 것이 아닐까. 김 감독은 훈련 속에서 절실함을 끌어내고 선수들 스스로 깨닫게 한다. 운동선수가 믿을 것은 땀밖에 없고, 진실된 땀은 보상받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김 감독 지휘 아래 에스케이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8033만원(2006년)에서 1억1402만원(2011년)으로 껑충 뛰었다. 겨울마다 많게는 1억원, 적게는 5000만원 안팎의 보너스도 받았다. 다른 사람 쉴 때 더 땀을 흘린 노력의 대가였다.
김성근 감독은 그동안 ‘팀’과 ‘조직’의 야구를 해왔다. 그러나 고양 원더스에선 개인의 활약도 중시한다고 했다. 빛나는 활약을 해야 프로구단에 뽑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시즌 중에라도 프로구단에서 원하는 선수가 있으면 곧바로 보내줄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올해 프로 2군과의 교류 경기에서 눈에 띄면 이적 동의나 이적료 없이 프로에 갈 수 있다. 벼랑 끝에서 희망을 갖는 이유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떠올려 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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