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33·삼성)
강명구·유재신, 그들이 사는 법
“잠깐만요.” 인터뷰 도중 티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어깨에 올려놓은 얼음주머니를 꺼낸다. 그를 만난 7일 대구구장의 기온이 36도를 찍었다. 땡볕에 훈련까지 해야 하니 몸을 식히는 비법이리라. “무슨. 아파서 아이스 찜질 한 거예요. 성한 곳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 팔도 다리도 멍투성이다. “슬라이딩을 많이 하니까 늘 다쳐요.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다칠 걸 알면서도 그냥 부딪치는 거죠.” 대신 나와 누를 훔쳐야 하는 삼성 대주자 강명구(33)는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말했다.
한 점의 승부가 중요한 요즘 프로야구에서 빠른 발의 대주자는 강팀의 조건이다. 한때 “1군 엔트리가 26명뿐인데 꼭 데리고 있어야 하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이젠 다르다. 승부처에서 따라가거나 도망쳐야 할 때 이들의 플레이 하나에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작전이 성공하면 ‘승리 메이커’가 따로 없다. 강명구가 일등 공신이다. 유재신(26·넥센)과 이상호(24·NC) 등이 뒤를 따른다.
‘가장 무서운 대주자’ 강명구는 2003년 데뷔 이래 대주자로만 10년간 붙박이 1군을 꿰찼다. 최근 대주자 도루 100개를 넘어섰고, 올해는 선발 라인업에도 자주 이름을 올리며 주목받는다. 강명구는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다. 눈을 뜨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2006년 데뷔한 유재신도 올 시즌 본격적인 대주자로 나서고 있다. 23타석에서 16득점을 했고, 4안타 2타점 5도루를 기록중이다. 8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유재신은 “1군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 좋다”며 웃었다.
강, 한두점 승부처서 도루 임무
백업요원으로 삼성 1군서 10년 유, 롯데 레전드 유두열의 아들
올해 ‘넥센의 강명구’ 이름 알려 100m 11초대…투수 연구 심혈
내리막길 달리며 주루 연습도
“미래 불투명…오늘 최선 다할 뿐” 180㎝ 남짓한 키에 70㎏ 초반의 날렵한 둘의 체격은 대주자로선 제격이다. 경쟁력은 ‘빠른 발’. 소년체전 육상 경기에 나갔던 강명구는 100m를 11초7에 달리고, 유재신도 11초대로 상대 수비수를 혼란에 빠뜨린다.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한 뒤 들어맞는 순간 쏜살같이 내달리는 등 수비수의 움직임을 읽는 안목과 머리 회전력이 뛰어나다. 주루 기술과 동물적 판단력은 기본이다.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다. 강명구는 “지난해 아슬아슬하게 도루에 성공한 경우가 잦아 올 시즌엔 스타팅 순간의 체중 이동과 준비 동작 때 몸의 각도까지 세밀하게 고쳤다”고 했다. 슬라이딩 연습은 기본이고 내리막길을 뛰며 속도를 조절하는 훈련까지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며 상대 포수와 투수의 습관도 공부한다. 유재신은 “투수와 포수의 사소한 버릇까지 꿰뚫고 있어야 한다. 투구 전 습관만 봐도 어떤 공을 던질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유재신은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내내 초시계로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소요되는 시간을 잰다. 매 경기 딱 한순간 등장할 때의 정신적 압박은 크다. 언제 투입될지 몰라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고, 실패 땐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5회를 넘어서면 몸을 풀지만, 몸만 풀다 나가지 않는 날도 많다. 강명구는 “솔직히 미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갈 때가 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쿵쾅거려요.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리죠.” 유재신은 그럴 때마다 “별거 아니라며 속으로 주문을 건다”고 했다. 다쳐도 아프다는 말도 잘 않는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요. 오늘 못하면 내일 못 나갈까, 웬만큼 아픈 건 그냥 참아요.”(강명구) 흰머리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득점했을 때 쾌감이 너무 짜릿해 오늘도 달린다”고 합창한다. 처음부터 백업요원은 아니었다. 그들도 그라운드의 화려한 주연을 꿈꿨다. 강명구는 상무 시절인 2009년 ‘2군의 이치로’라 불릴 정도로 타격감이 좋았다.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한 뒤 목표는 “1번 타자 겸 유격수”였다. 롯데에서 뛰며 1984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도 올랐던 유두열의 아들 유재신도 “주전 유격수”를 원했다. 처음 대주자로 나가라고 했을 땐 왜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나 속상하기도 했다. 자존심도 상했다. 강명구는 “예민할 때는 그라운드의 육상선수라는 기사만 봐도 화가 났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는 생각을 바꿨다. 강명구는 “이 역할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다. 타석에 서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팀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은 뛰는 것”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유재신도 “팀을 위해 1점이 필요할 때 1점을 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유재신은 “중고등학교 땐 아빠와 비교당하는 게 싫었지만, 이젠 잘하고 있다는 아빠의 응원이 힘이 된다”며 웃었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강명구는 “나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는 글을 보면 감사하다. 마무리의 가치가 오른 것처럼 대주자의 가치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1등만 모인 프로 1군에서 그들은 지금껏 일종의 비주류였다. 강명구의 연봉은 프로야구 평균에 못 미치는 6000만원. 유재신은 3200만원이다. 그럼에도 둘은 “열심히 하다 보면 또다른 기회는 올 것”이라며 오늘도 살기 위해 달린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뉴시스
유재신(26·넥센)
백업요원으로 삼성 1군서 10년 유, 롯데 레전드 유두열의 아들
올해 ‘넥센의 강명구’ 이름 알려 100m 11초대…투수 연구 심혈
내리막길 달리며 주루 연습도
“미래 불투명…오늘 최선 다할 뿐” 180㎝ 남짓한 키에 70㎏ 초반의 날렵한 둘의 체격은 대주자로선 제격이다. 경쟁력은 ‘빠른 발’. 소년체전 육상 경기에 나갔던 강명구는 100m를 11초7에 달리고, 유재신도 11초대로 상대 수비수를 혼란에 빠뜨린다.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한 뒤 들어맞는 순간 쏜살같이 내달리는 등 수비수의 움직임을 읽는 안목과 머리 회전력이 뛰어나다. 주루 기술과 동물적 판단력은 기본이다.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다. 강명구는 “지난해 아슬아슬하게 도루에 성공한 경우가 잦아 올 시즌엔 스타팅 순간의 체중 이동과 준비 동작 때 몸의 각도까지 세밀하게 고쳤다”고 했다. 슬라이딩 연습은 기본이고 내리막길을 뛰며 속도를 조절하는 훈련까지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며 상대 포수와 투수의 습관도 공부한다. 유재신은 “투수와 포수의 사소한 버릇까지 꿰뚫고 있어야 한다. 투구 전 습관만 봐도 어떤 공을 던질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유재신은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내내 초시계로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소요되는 시간을 잰다. 매 경기 딱 한순간 등장할 때의 정신적 압박은 크다. 언제 투입될지 몰라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고, 실패 땐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5회를 넘어서면 몸을 풀지만, 몸만 풀다 나가지 않는 날도 많다. 강명구는 “솔직히 미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갈 때가 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쿵쾅거려요.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리죠.” 유재신은 그럴 때마다 “별거 아니라며 속으로 주문을 건다”고 했다. 다쳐도 아프다는 말도 잘 않는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요. 오늘 못하면 내일 못 나갈까, 웬만큼 아픈 건 그냥 참아요.”(강명구) 흰머리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득점했을 때 쾌감이 너무 짜릿해 오늘도 달린다”고 합창한다. 처음부터 백업요원은 아니었다. 그들도 그라운드의 화려한 주연을 꿈꿨다. 강명구는 상무 시절인 2009년 ‘2군의 이치로’라 불릴 정도로 타격감이 좋았다.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한 뒤 목표는 “1번 타자 겸 유격수”였다. 롯데에서 뛰며 1984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도 올랐던 유두열의 아들 유재신도 “주전 유격수”를 원했다. 처음 대주자로 나가라고 했을 땐 왜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나 속상하기도 했다. 자존심도 상했다. 강명구는 “예민할 때는 그라운드의 육상선수라는 기사만 봐도 화가 났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는 생각을 바꿨다. 강명구는 “이 역할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다. 타석에 서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팀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은 뛰는 것”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유재신도 “팀을 위해 1점이 필요할 때 1점을 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유재신은 “중고등학교 땐 아빠와 비교당하는 게 싫었지만, 이젠 잘하고 있다는 아빠의 응원이 힘이 된다”며 웃었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강명구는 “나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는 글을 보면 감사하다. 마무리의 가치가 오른 것처럼 대주자의 가치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1등만 모인 프로 1군에서 그들은 지금껏 일종의 비주류였다. 강명구의 연봉은 프로야구 평균에 못 미치는 6000만원. 유재신은 3200만원이다. 그럼에도 둘은 “열심히 하다 보면 또다른 기회는 올 것”이라며 오늘도 살기 위해 달린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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