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 시계가 0을 찍는 순간 함성이 용솟음쳤다. 입석까지 매진돼 빼곡히 들어선 8734명의 관중들은 얼싸안았고, 선수들은 코트에 눕거나 펄쩍펄쩍 뛰었다. 혼혈귀화 선수 문태종은 코트에 올라온 어린 딸과 아들의 뺨에 입을 맞추었고, 김진 감독도 활짝 웃었다. 17년 만의 우승에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프로농구 엘지(LG)가 9일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3~2014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케이티(KT)를 95-85로 누르고, 1997년 창단 이후 17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40승14패로 모비스(40승14패)와 승률은 같지만 맞대결 공방률에서 앞섰다.
엘지는 역대 4번의 준우승으로 가장 많이 정상 문턱에서 멈췄다. 지난 시즌에는 8위로 하위권이었다. 그러나 ‘17년 한풀이’를 위해 베스트5를 바꾸는 등 선수 구성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구단 말마따나 “되려고 하는지” 운도 따랐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1.5%의 확률을 뚫고 1순위 지명권을 얻어 김종규라는 복덩이를 챙겼다. 우선 지명권이 있던 에스케이(SK)가 문태종을 포기하자 품에 안았다. 어느 시즌보다 데이본 제퍼슨, 크리스 메시 등 외국인 선수들의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선수단의 응집력을 높인 것은 김진 감독의 리더십이었다. 평균 연령 28살의 ‘젊은 엘지’는 패기는 좋았지만 노련미가 떨어졌다. 김진 감독은 수시로 대화하며 신구 조화를 꾀했다. 어린 선수들의 기복이 심해도 “실수해도 좋으니 자신 있게 하라”며 기를 불어넣었다. 문태종이 김 감독의 마음을 읽었는지 선수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수해주며 중심을 잡았다. 김종규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끈끈한 조직력을 갖추게 됐다.
분위기가 좋으니 2점슛은 성공률 55.49%로 전체 10개 팀 가운데 1위에 올랐고, 3점슛은 성공률 34.92%로 5위를 차지하는 등 외곽포도 살아났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두 외국인 선수와 김종규가 안쪽에서 착실히 득점을 해주면서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시즌 모비스에서 뛰던 김시래를 시즌 뒤 영입하려고 외국인 선수까지 내줬던 모험도 통했다. 이번 시즌 엘지의 코트 사령관을 맡은 김시래는 전경기에 출전해 도움주기 252개(3위)를 기록하는 등 엘지 우승에 큰 몫을 했다.
김진 감독은 “좋은 선수를 만난 건 복이다. 어린 선수들이지만 정말 좋은 선수들이다. 기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아직 플레이오프가 남아 있지만 주장 김영환이나 최근에 부진했지만 기승호가 고참으로 팀을 끌어가고 있는 부분에서는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창원/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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