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한화 대 넥센의 경기에서 7회말 넥센팬들이 열띈 응원을 펼치고 있다. 2015.3.29 (서울=연합뉴스)
윤형중의 ‘꼼꼼한 리뷰’
‘야신’ 김성근과 ‘염갈량’ 염경엽의 투수 교체 한 판 승부
성공·실패 하나씩 안고 출발…앞으로 어떤 묘수 선보일까?
‘야신’ 김성근과 ‘염갈량’ 염경엽의 투수 교체 한 판 승부
성공·실패 하나씩 안고 출발…앞으로 어떤 묘수 선보일까?
김성근(73) 한화 이글스 감독이 2015년 프로야구 개막전 경기를 마치고 감독 3년차인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에게 “잘 배웠다”고 말했다. 야신으로 불리는 김 감독이 떠오르는 지략가로 꼽히는 염 감독에게 무엇을 배웠다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언제 어떻게 투수를 교체할까’, 즉 ‘투수교체에 대한 고민’이었다. 투수교체를 둘러싼 두 감독의 지략대결은 개막 2연전의 두 번째 경기인 29일에도 이어졌다.
투수교체는 늘 감독들의 고민거리다. 투수코치에게 맡기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 감독이 직접 결정한다. 투수교체는 경기의 분위기를 바꾸는 핵심 ‘작전’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스타일도 감독마다 각양각색이다. 김응룡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과거 해태 시절부터 ‘투수교체는 빠를 수록 좋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선동렬 전 기아 타이거즈 감독도 삼성 라이온스의 투수코치 시절부터 ‘빠른 교체 타이밍’으로 유명하다. 김성근 감독은 좌타자에게 좌투수를 배치하고, 우타자에게 사이드암이나 우투수를 붙이는 ‘좌우놀이’를 즐긴다. 염경엽 감독은 오히려 좌우놀이의 회의론자다. 또한 신인투수에게 충분히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각기 나름의 지론과 철학이 있는 분야가 투수교체다. 이틀간 경기에서 두 감독은 어떤 수를 염두에 두고 투수교체를 했을까.
첫날 연장 12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한 한화의 김 감독은 “선수들은 잘 했지만, 벤치의 미스가 있었다”는 짧은 말만 남겼다. 이튿날인 29일 경기장을 찾아 전날의 발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어제는 투수교체를 두 번 틀려서 졌다. 안영명을 투입한 부분과 12회에 송창식을 바꾸지 않은 부분이 문제였다. 데이터가 부족했다. 어제 경기가 끝나고 안영명의 경기를 체크해보니, 항상 주자를 내보내고 시작한 뒤에 막더라. 내가 잘 몰랐던 부분이다. 12회 홈런을 맞을 때에도 다음 타자가 이택근이라 그대로 갔다. 서건창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7회 2사 후 볼넷으로 출루한 김태균의 대주자 교체도 미스다. 4번타자 없이 12회까지 치렀다. 그것도 감독의 실수다.”
이어 김 감독은 상대 감독의 투수교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넥센이 상당히 과감하게 야구를 하더라. 빠른 템포로 야구를 하더라. 마지막에 신인 투수(김택형)을 올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감독 3년차면 아직 고민할 텐데, 투수들도 빨리 바꾸더라. 12회까지 하고 나니 ‘아, 이 템포구나’ 싶었다. 지난해에도 이렇게 야구를 한거 아닌가 싶다.”
이틀째인 이날 김 감독은 전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3회까지 볼넷 하나만 내주면서 피안타 하나 없이 호투한 송은범이 4회에 흔들리며 2점을 내주자, 김 감독은 망설이지 않고 5회에 안영명을 투입했다. 안영명은 여전히 영점이 잡히지 않은 듯, 두 번째 타자인 서건창에게 볼넷을 내줬다. 전날 첫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자 바로 교체했으나, 이날은 안영명을 더 믿고 기용했다. 안영명은 믿음에 바로 보답하지는 않았다. 다음 타자인 이택근에게 안타를 내주고, 타격감이 좋은 3번타자 유한준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줘 만루를 허용했다. 하지만 결국 ‘안영명 사용법’은 통했다. 다음 타자인 박병호에게 헛스윙 세번을 유인하며 삼진으로 잡아냈고, 5번타자 김민성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 이닝을 마무리했다.
김성근 감독은 다음 이닝에서도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번에도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전날 끝내기 홈런을 허용한 송창식이 7회 2사에 등판해 첫타자인 김하성에게 2루타를 허용하자, 김 감독은 전날 아껴둔 ‘박정진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박정진은 첫타자 박헌도에게 볼넷을 내주고, 다음 타자인 서건창에게 유격수와 중견수 사이로 떨어지는 빗맞은 안타를 허용했다. 3대3 동점이 된 순간이다. 박정진은 이택근에게 볼넷을 내주며 만루를 내줬다. 전날의 역전패가 떠오르고, 지난해까지 숱하게 겪어 온 역전패가 기억나는 순간이었다. 박정진은 다음 타자인 유한준에게 내리 볼 세개를 던지며 악몽은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박정진은 그때부터 빠른 공을 가운데로 밀어넣기 시작했고, 유한준은 이를 받아쳐 좌쪽 펜스 근처까지 날렸으나 공은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7회까지 3대3 팽팽한 무승부를 기록한 가운데 승부의 추는 8회부터 한화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키는 투수교체에 있었다. 염경엽 감독은 7회 1사에 기용한 좌완 이상민을 8회에도 내보냈다. 좌우놀이의 회의론자인 염 감독은 “올해엔 좌우놀이 좀 해보겠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이상민, 김택형 등 두 좌완에 기대를 걸었다. 이상민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한 듯 김경언과 이용규 두 좌타자를 잡아냈고, 8회에도 좌타자인 모건과 승부했다. 하지만 몸에 맞는 볼로 모건의 출루를 허용했다. 염 감독은 바로 필승조 조상우를 내보냈고, 조상우는 4번타자 김태균을 3루수 앞 땅볼로 잡았다. 여기서 모건의 보이지 않는 플레이 하나가 경기의 결과를 바꿨다. 스타트가 빨랐던 모건은 깊은 슬라이딩으로 2루로 내딛은 서건창의 발과 충돌했다. 이로 인해 서건창은 1루에 공을 던지지 못했다. 김태균의 발이 느리기 때문에 타이밍 상으론 충분히 아웃을 잡을 수 있었다. 모건의 슬라이딩은 고의성 여부를 떠나 타이밍상 슬라이딩을 해야 할 순간이기 때문에 반칙 논란을 겪지 않았다. 조상우는 다음 타자인 김회성을 몸에 맞는 볼로 1루로 내보냈고, 6번 타자인 정범모에게 2루 땅볼을 허용했으나, 공이 2루 베이스를 맞고 튀어오르는 바람에 2루 주자가 득점했다. 한화가 다시 리드를 잡은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8회 말에 여전히 박정진을 내보냈다. 좌타자인 이성열을 잡기 위해서였다. 박정진은 첫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고, 투수는 전날 3이닝을 퍼펙트로 막은 윤규진으로 교체됐다. 윤규진은 김하성에게 안타를 허용했으나, 견제로 아웃시켰고, 다음타자 유신정을 뜬공으로 잡았다.
넥센의 타격이 강하기 때문에 한화로서는 9회 초에 추가점이 절실했다. 염 감독은 9회초 조상우 대신 사이드암 마정길을 내세웠다. 상대는 좌타자 강경학이었다. 사이드암은 좌타자에게 약하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마정길은 지난해 좌타자에게 강했다. ‘데이터’대로 마정길은 강경학을 1루 땅볼로 잡아냈다. 하지만 9번 타자인 권용관에게 볼넷을 내줬다. 넥센으로선 꼭 불을 꺼야하는 순간이었다.
전날 염 감독의 최고 승부수가 신인 ‘김택형’의 12회 기용으로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고졸 신인투수가 개막전 승리투수가 된 것이라면, 이날의 최고 승부수 역시 신인 김택형의 기용이었다. 1점 뒤진 9회 1사 1루의 상황에서 김택형을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이날의 승부수는 ‘실수(失手)’였다. 빠른 공과 슬라이더가 강점인 김택형은 초구를 바깥쪽으로 힘차게 뿌렸다. 이날 타격감이 좋았던 1번타자 김경언은 초구에 ‘기습번트’를 단행했으나, 공은 타자의 바깥쪽에서 포수 미트로 들어왔다. 김 감독은 ‘기습번트’ 작전을 걸었고, 염 감독은 작전에 대비한 ‘공 빼기’ 작전으로 맞선 것이다. 김택형은 2구도 빠른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며 유리한 볼 카운트를 만들었다. 신인의 패기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거기까지였다.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도 김택형은 다시 한번 가운데 몰린 공을 던졌고, 김경언은 여기서 3루쪽 강습 타구로 2루타를 뽑았다. 다음 타자인 이용규도 투스트라이크 노볼이라는 불리한 카운트에서 2,3루간 빠지는 안타를 뽑으며 한 점을 더 뽑았다. 사실상 승부의 추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운 순간이었다.
‘신인 김택형 사용법’은 평소 염 감독의 지론과도 어긋난다. 염 감독은 신인투수들을 다듬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1라운드 지명한 조상우는 그해 5월15일 19대1로 이기는 경기에 등판시켜 부담감 없이 첫 경기를 치르도록 했다. 선발투수로 키우고 있는 하영민은 지난해 전반기 호투에도 불구하고 8월에 조기 시즌아웃을 하며 특별관리했다. 하지만 김택형은 개막전에 4대4 동점에서 연장 12회에 기용됐다. 염 감독도 28일 경기를 마치고 “신인투수를 그런 압박감 있는 상황에 내보내기 싫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쉽게 이길 것 같지 못해 마음 편하게 던지라고 했다”고 말했다. 어차피 이기기 어려운 경기이니 믿고 맡긴 것이 좋은 결과를 낸 것이었다. 염 감독은 “팀에게도 좋은 결과지만, 본인 스스로도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며 흐뭇한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29일에도 승부처에 김택형을 기용하면서 하루 전의 ‘신인 기용법’을 이틀간 고집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김택형은 유리한 카운트를 잡고도 성급한 승부를 걸며 ‘경험 부족’을 드러냈다. 고졸 신인투수로선 이틀간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다. 이렇게 이틀간 김성근 염경엽 양 감독은 투수교체 성공과 실패 경험을 하나씩 안고서 새 시즌을 열었다. 앞으로 두 지략가가 어떤 묘수를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염경엽(45) 넥센 감독, 사진 넥센 제공
김성근 감독, 사진 한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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