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한화이글스 감독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2년간 정들었던 <한겨레> 토요판팀을 떠나 올봄에 스포츠부로 둥지를 옮긴 윤형중입니다.
이 지면을 통해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스포츠부로 부서를 옮긴 이유는 바로 김성근 감독 때문입니다. 야구 기자가 팬심을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당분간 육아휴직을 가기에(한겨레는 남기자도 육아휴직을 가는 좋은 회사입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실은 저 한화 이글스의 골수팬입니다.
지난겨울, 어느 야구팬의 1인시위를 통해 불을 지핀 ‘김성근 감독 영입운동’은 현실이 됐습니다. 에스케이 재직(2007~2011년) 시절에 본 김성근 감독은 일반 야구팬으로서 양가적인 감정을 품게 만드는 분이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한화팬으로서 정말이지, 너무도 이기고 싶었습니다.
시즌을 10경기 남짓 남기고서 한화가 8위로 주저앉자, ‘김성근 야구’에 대한 성토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현장에서 한 시즌 가까이 지켜본 제 감정은 좀 복잡합니다. 시즌 초에는 ‘마약야구’ 열풍을 일으킨 한화의 선전을 보면서 드러내진 못해도 내심 쾌재를 불렀습니다. 잘 던지던 외국인 투수 탈보트가 잇따른 4일 휴식 후 등판으로 제 컨디션을 못찾을 땐, 고개를 조금 갸우뚱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프로 선수들을 고교 선수처럼 매일같이 강도 높은 훈련에 내모는 특유의 지도 방식도 ‘만년 꼴찌팀’이라는 정상참작이 없었다면 ‘시대착오적인 리더십’이라고 더 큰 비판을 받았을 겁니다. 안영명, 배영수, 김민우 등의 선발투수들이 잘 던지다가도 경기 중반에 안타 하나에 교체되는 걸 보면서도, 아쉽긴 하지만 이기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였습니다. 권혁, 박정진, 윤규진 등의 필승조 불펜투수들의 혹사 논란이 불거질 땐, 시즌 끝까지 저렇게 하진 않겠지란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바람이 번번이 빗나갔고, 극한에 몰아붙이는 투수 혹사가 계속되었지만, 그럼에도 김성근 감독을 쉽게 비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성근만 아니었으면 한화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김성근만큼 늘 절실하게 야구를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두 질문에 쉽게 ‘아니다’라고 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종 야구 기사의 댓글이나, 야구 커뮤니티를 둘러보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복잡합니다. 야구계에서 김성근만큼 찬반론자들이 격렬한 논쟁(이라기보단 감정적인 아귀다툼)을 벌이는 감독이 드뭅니다. 에스케이 시절엔 안티팬들이 우세했지만,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를 거쳐 만년 꼴찌팀 한화를 맡고 올 시즌 중반까지는 옹호론자들의 기세도 상당했습니다.
저는 양쪽에 조심스런 제안을 하나씩 하며 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까 합니다. 김성근 비판론자들에겐 ‘노리타’(노인성애자), ‘세이콘’(재일동포인 김 감독이 일본에서 썼던 이름) 등의 모독적인 언어로 희화화하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성근 야구에 대한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 리더십, 조직운영론, 세이버매트릭스(통계를 통한 야구분석 방법) 등을 심도있게 논의해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사안별로 근거를 가지고 논쟁을 했으면 합니다.
또한 옹호론자들은 ‘김성근 아니었으면 한화가 여기까지 못 왔다’는 것을 주된 논거로 내세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런 주장은 양쪽이 인정하는 전제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다른 모든 비판을 제압하는 논거가 될 순 없습니다. 마치 박정희 시대의 인권탄압을 비판하면, 그 시절에 경제가 발전하지 않았느냐며 반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김성근 감독은 ‘일구이무’(두번째란 없다. 이번 공에 내 모든 것을 실어야 한다)를 신조로 삼았고, 그런 그의 야구에 많은 이들이 울고 웃었습니다. 야구에 그의 인생과 철학이 오롯이 담겼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야구에 대한 절실함’ 역시 양쪽이 인정하는 전제가 될 뿐, 김성근 야구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는 주장으론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들을 던져 봅니다. 권혁의 시즌 전반과 후반의 성적은 어떻게 다를까, 최근 성적을 비교할 때 왼손 불펜투수 중에서 권혁과 김기현 중에 누가 타자를 출루시킬 확률이 높을까, 등판 간격별로 선발투수들의 성적은 어떻게 차이날까, 박정진이 시즌 후반에 던지지 못할 정도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팀의 필승조는 시즌 중에 어떻게 바뀌었을까. 김 감독과 한화의 코치들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요?
김 감독에게도 조심스레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그가 선수들에게 늘 강조하는 ‘순한 마음’은 ‘내 말을 들으라’는 독단적인 리더십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김 감독의 야구도 정수를 간직한 채 조금씩 변했으면 합니다.
윤형중 스포츠부 기자 hjyoon@hani.co.kr
윤형중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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