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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목동야구장 중앙 한쪽에는 조그만 방이 있다. 선반 위에는 전통차 주전자와 잔이 놓여 있고, 은은한 향을 내면서 타는 촛불 덕에 방 안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싼다. ‘염갈량’(염경엽+제갈량)으로 통하는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의 방이다. 염 감독의 방을 찬찬히 훑어보면 문득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와신상담, 절치부심이다.
프로야구 감독들 방에는 보통 1, 2군 선수단 현황과 한달 대진표가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다. 그런데 염갈량의 방에는 하나가 더 있다. 2013년, 2014년 정규시즌 월별 성적과 포스트시즌 성적이 적혀 있는 A4 용지가 염 감독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어 있다. 2013년 72승54패2무(+18승), 정규시즌 3위/최종성적 4위. 2014년 78승48패2무(+30), 정규시즌 2위/최종성적 2위, 6연승으로 정규시즌 마감(1위와 0.5게임 차). 염 감독은 “지난 성적을 보면서 매일 복기하고 있다”고 했다. 졌을 때의 분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2014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에 패한 뒤 펑펑 눈물을 쏟았던 염 감독은 “전 시리즈를 통틀어 5차전 9회말 2사 1루에서 손승락이 채태인과 상대하면서 볼카운트 0-2(투스트라이크)에서 던진 몸쪽 속구가 지금도 계속 생각난다. 당시 채태인은 무조건 치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떨어지는 공으로 상대했어야 했는데…”라며 여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당시 넥센은 삼성에 1-0으로 앞선 9회말 2사 1루에서 채태인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했고, 최형우에게 끝내기 2루타를 두들겨 맞았다. 그때 시리즈는 완전히 삼성으로 기울었다.
강정호가 미국으로 진출하고 서건창이 부상으로 장기 결장하는 악조건 가운데서도 올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온 넥센은 현재 두산과 치열한 3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략 대결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염경엽 감독은 오늘도 감독 방에서 작년, 재작년의 패배를 곱씹으면서 가을의 반격을 다짐하고 있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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