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불펜 피칭 뒤 A.J 엘리스와 포옹하고 있는 류현진
박승현의 MLB리포트
야구를 취재하면서 프로 선수들에게 ‘훈수’ 두는 것은 나름 금기로 여기며 지냈는데 근자에 그동안 지켜오던 원칙을 그것도 꾸준하게 깨야 했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의 일입니다. 어깨 수술을 마친 엘에이(LA) 다저스 류현진이 막 재활운동을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재활훈련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복귀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재활훈련 다음 단계로 갈 때마다 비슷한 훈수를 두었습니다. “운동선수라 금방 답답해지고 더 힘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천천히 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가장 최근의 훈수는 1월 중순 류현진이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캐멀백랜치에서 개인 훈련을 시작한 직후였습니다. “인천공항에서 개막전에 맞춰 복귀하겠다고 인터뷰한 것 봤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전까지 아마추어의 훈수에 반응이 없던 류현진은 “천천히 하다가 아예 ‘천천히’가 되는 수가 있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기에 “우리 팀 선발도 많은데…”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보름 뒤 다저스타디움에서 만난 류현진이 이전과 다른 말을 했습니다. “서두르다 보면 무리하게 된다. 천천히 준비하겠다.” 팬페스트에 참가했다가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 처음으로 면담한 이후였습니다. 이날 로버츠 감독은 “야구는 10월까지 이어진다. 복귀하면 끝까지 함께해야 하므로 서두르지 마라”고 조언했습니다. 이후로는 주제넘는 훈수가 필요 없었습니다. 복귀 시점 등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팀에서 마련한 일정에 따른다”고 했습니다.
류현진은 팀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뒤 두 번의 불펜 피칭을 치렀습니다. 2월27일(한국시각)의 두 번째 불펜 피칭을 앞두고 류현진은 로버츠 감독이 “다른 선수들보다 2주 정도 늦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2주요? 아마 한 달은 늦은 것 같은데…” 하더니 “2주나 한 달은 중요하지 않다. 볼을 정상적으로 던지는 순간이 오면 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류현진은 이날 35개를 던졌습니다. 첫 번째보다 5개 많았고 처음으로 체인지업도 4개 던졌습니다. 하루 전에 “투구 수는 무리해서 늘리지 않겠다. 그라운드 피칭에서 변화구도 던져봤는데 불펜에서는 가봐야 알겠다”고 말한 뒤였습니다.
류현진이 마에다 겐타와 나란히 서서 포수 에이제이(A. J.) 엘리스를 상대로 던진 공은 구위가 좋았습니다. 첫 번째 불펜 피칭에 비해 포수의 미트에 꽂히는 볼의 끝이 살아 있었습니다. 볼을 던지고 난 다음 구위에 만족해하는 류현진의 표정도 몇 번 스쳐 지나갔습니다.
불펜 피칭이 끝난 뒤 팔을 활짝 벌리며 다가선 엘리스가 류현진을 굳게 안았습니다.(사진) 주먹이나 손바닥을 마주치는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2015년 3월13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시범경기 후 1년 만에 다시 류현진의 볼을 받아준 포수가 보내는 최고의 격려였습니다. 이즈음에 ‘류현진이 감독과 구단의 뜻을 이해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고 류현진도 “5월에는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류현진과 똑같은 어깨 관절순 수술을 받고 재기에 성공한 팀 동료 제이피(J. P.) 하월이 수술에서 복귀까지 걸린 시간도 1년이었습니다.
박승현 애리조나/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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