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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당해도 풀스윙…난 4번타자니까

등록 2016-05-23 18:57수정 2016-05-23 21:36

두산의 4번 타자 오재일이 이달 4일 안방인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방망이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두산의 4번 타자 오재일이 이달 4일 안방인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방망이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통통 스타]
두산 4번 타자 오재일

4번타자 되는 데 12년?
2005년 입단해 부진으로 2군에
올해 홈런 7개 타율 0.394 펄펄

‘만년 유망주’ 꼬리표 뗀 비결?
“왜 이렇게 잘맞는지 나도 몰라요
그저 적극적으로 승부했을 뿐”

4번 타자 제일 조건은?
“눈빛부터 달라야 하죠
자신있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오재일(30·두산 베어스)은 “요즘 야구장 가는 게 그저 재밌기만 하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프로 데뷔 12년 만에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고 2016 케이비오(KBO)리그 1위 팀의 4번 타자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자랑스럽고 뿌듯하죠.” 에둘러 답할 줄 알았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평소에는 말을 되도록 아끼는 편인 그다.

하지만 두산의 4번 타자가 주는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부담이 많은 자리긴 하지만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가 4번이잖아요”라며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낸 그는 “삼진을 당한다 해도 풀스윙을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에요”라고 했다. 그래, 이 눈빛이었다. 타석에서 오재일이 상대 투수의 공을 노려보는 매서운 눈빛. 거포로서의 잠재력은 무궁했지만 10년이 넘도록 좀처럼 발현되지 않아 기대가 어느덧 체념으로 바뀌어갈 무렵, 오재일은 보란 듯이 우뚝 솟아올랐다.

오재일은 올 시즌 초반부터 맹타를 휘두르며 외국인 타자 닉 에반스(30)를 2군으로 밀어내고 4번 타자 중책을 맡았다. 스스로도 “내가 왜 이렇게 잘 맞는지 나도 잘 모를 정도예요”라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타석에서 초반에 승부를 보려고 적극적으로 쳤던 것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네요”라고 했다.

지난 6일 갑작스런 오른쪽 옆구리 근육 통증으로 1군 라인업에서 제외돼 열흘을 쉬었으나 타격감은 여전하다. 타율 0.394, 7홈런 26타점으로 활약중이다. 2군 공백기 때문에 규정 타석(130타석)에는 18타석이 모자라 타격 순위에는 없지만 김문호(0.422·롯데)에 이어 타율이 가장 높다. 오재일에겐 복귀 후에도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것, 즉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아프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오재일의 야구사를 돌아보면 이 복귀 소감이 주는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재일은 2005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계속 2군에 머무르다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현대를 이어받은 넥센으로 돌아와 이숭용과 번갈아 1루수를 맡다가 2011년 시즌 중 이숭용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주전 1루수로 낙점됐다. 기회를 드디어 잡나 싶었지만 당시 엘지(LG)에서 트레이드돼 온 군복무 동료 박병호에게 다시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넥센에서 기대도 많이 받았어요. 상무 때 잘했거든요. 그런데 펀치력이 병호한테 밀리기도 했고 제가 기회를 잘 잡지 못했어요.” 2012년 7월 다시 두산으로 이적했지만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머물러야 했다. 그렇게 2군을 전전하던 오재일은 2013년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봉중근(LG)을 상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3루타를 쳐낸 데 이어 한국시리즈 2차전에선 오승환을 상대로 결승 홈런을 때려내 2차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면서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4년엔 외국인 타자 칸투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다시 2군 생활을 해야 했다. “2013년도 후반기에서 포스트시즌까지 감이 좋았고 그해 스프링캠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용병이 1루로 오니까 마음을 좀 놨던 거 같아요”라며 의기소침했던 당시를 떠올린 그는 “저는 겉으로는 쿨한 척하려고 하지만 작은 것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2군에 내려가면 멘탈이 많이 흔들리거든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용병은 계속 올 거잖아요. 제 컨디션 잘 유지하면 기회는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참고 기다리던 오재일은 2015년 후반기 1군으로 올라와 홈런 13개를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김태형 두산 감독이 “올 시즌 오재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고 평가할 정도로 인정받는 중심타자가 됐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20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20살 때부터 잘하는 선수들 보면 부러워요. 저는 너무 오래 유망주이기만 했어요. 그땐 왜 자신있게 하지 못했을까요.” 한숨을 내쉬는 그였다. 물론 시간을 돌이킬 순 없다. 하지만 시간이 오재일에게 준 소중한 선물도 있다. 오재일은 2군 생활로 힘겨워하던 4년간 그를 묵묵히 지켜주던 사람과 2014년 12월 결혼해 2세 출산을 앞두고 있다. “아내는 야구 룰도 잘 몰라요. 그래도 제가 홈런 치면 가장 기뻐해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과 제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악물고 해야죠.” 오재일이 마침내 웃어 보였다.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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