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투수 김명신이 25일 저녁 넥센 히어로즈와의 고척 경기에서 1회말 김민성의 타구에 얼굴을 맞은 뒤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왼쪽 광대뼈 세 군데가 골절돼 조만간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연합뉴스
1994년 4월4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마이크 윌슨은 시범경기에서 부 톰슨의 타구에 입을 강타당하고 말았다. 그는 훗날 “10초 가량 암흑이었다. 입에 손을 대니 아무 것도 없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손에 부러진 이빨 2개가 잡혔다”고 했다. 그의 부러진 세번째 이빨은 2루수가 갖다줬다. 윌슨의 유니폼은 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타구가 2인치만 더 높았으면 저는 죽었어요.’
25일 밤 케이비오(KBO)리그에서도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두산 새내기 오른손 투수 김명신(24)이 넥센 김민성의 타구에 얼굴을 맞았다. 타구를 날린 김민성도 깜짝 놀라 마운드 쪽으로 향했지만 인플레이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시 1루쪽으로 뛰었다. 김명신은 얼굴 왼쪽 광대뼈 3군데가 골절됐다.
이렇게 쓰러진 투수가 한둘이 아니다. 브라이스 플로리(당시 보스턴)는 눈을 강타당했고, J.A 햅(토론토)은 머리에 공을 맞았다. 브랜드 맥카시도 오클랜드 시절 두개골이 골절됐고, 제프 니만(탬파베이)은 다리가 부러졌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엘지(LG) 김광삼은 지난해 8월 머리뼈에 금이 갔고, 삼성 우규민은 얼마전 오른 어깨를 강타당했다. 1990년대에도 쌍방울 김원형(현 롯데 코치)은 코뼈가 부러지고 광대뼈가 함몰됐고, 태평양 최상덕(현 kt 코치)은 앞니 4개가 부러졌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2.74마일(149㎞), 케이비오리그는 143㎞다. 이 공을 정타로 때렸을 때 타구 속도는 150~200㎞에 이른다. 타자는 헬멧은 물론 팔꿈치와 무릎에도 보호대를 착용하지만 투수는 완전 무방비다. 엘에이(LA) 다저스 전설의 투수 오렐 허샤이저는 “마운드로 날아든 공은 살인무기로 돌변한다”며 공포감을 나타냈다.
보호장비 착용 논의는 활발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5온스(141g) 이하 정도로 모자 옆에 ‘케블라’(방탄 조끼로 사용하는 강철 섬유)를 넣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투수들조차 “우스꽝스럽다”며 부정적이다. 게다가 얼굴은 여전히 무방비다. 이 때문에 미국미식축구리그(NFL) 선수들이 착용하는 헬멧을 쓰자는 의견도 있다.
두산에서 뛰어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마이크 쿨바는 2007년 미국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1루 코치로 나갔다가 파울 타구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이후 1루와 3루 주루코치는 헬멧 착용이 의무화됐다. 투수들도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거추장스러운 게 대수인가, 미식축구용 헬멧이면 어떤가.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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