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승엽이 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 후 열린 은퇴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1회말 1사3루.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은 타석에 들어서면서 예의 모자를 벗어 마운드 위 투수 한현희(넥센 히어로즈)에게 목례를 했다. 2017시즌 처음으로 대구 라이온즈파크를 꽉 채운 2만4000명의 관중은 ‘포에버 36’이 적힌 수건을 흔들면서 ‘이승엽~홈!런!’을 외쳤다.
볼 카운트 1(볼)-0(스트라이트). 한현희의 시속 147㎞ 속구가 한복판으로 날아들었다. 이승엽의 방망이가 호쾌하게 돌아갔다. 우중월 홈런. 3일 열린 자신의 프로 생애 마지막 경기 첫 타석에서 이승엽은 그렇게 자신의 야구 인생을 채웠던 ‘홈런’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순간 라이온즈파크는 “아~아~이승엽, 삼성의 이승엽, 아~아~이승엽, 전설이 되어라”라는 응원가가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삼성 이승엽이 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 1회말 1사 3루에서 선제 투런포를 터뜨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뒤 더그아웃 동료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사실 아침부터 그의 기분은 “별로”였다. 라이온즈파크에 들어서던 그의 첫 한 마디도 “야구장 오기 싫었다”였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이승엽은 “어제까지는 못 느꼈던 기분인데 오늘은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라면서 “야구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줬는데 이제 다시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뒤숭숭”하고 “씁쓸”하다는 표현도 했다.
이날 삼성 동료 선수들이 전부 이승엽과 똑같이 ‘36번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가운데 그는 1루수로 3번 타순에 배치됐다. 99년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 이상(54개)을 쳤을 때도, 2003년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56개)을 세웠을 때도 이승엽은 ‘삼성 1루수 겸 3번 타자’였다. “제일 좋은 성적을 낸 게 3번 타순에 1루수였다. 감독님과 팀의 배려에 감사하다”고 그는 말했다.
팀 내에서 외국인타자 러프에 이어 제일 많은 홈런을 치고 있는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은 상황. 이승엽은 “후배들을 위해서도 은퇴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는 “은퇴는 2년 전 계획한 일”이라며 “지금 떠나야지 2군에서 고생하는, 열심히 하는 후배들에게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지 않겠느냐. 1군 주전이 굉장히 힘들 수 있는데 그 자리를 차지하면 다시는 놓치지 말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 경기에 앞서 삼성 이승엽이 아내 이송정이 던진 시구 공을 건네주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 경기에 앞서 삼성 이승엽이 아내 이송정이 던지는 시구를 받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그의 마지막 경기 첫 공은 아내 이송정 씨가 던졌다. 2002년 1월 결혼 이후 첫 시구였다. 2017 올스타전에서 시구, 시타를 맡았던 은혁, 은준 두 아들은 엄마의 시구, 아빠의 시포를 지켜봤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가족의 응원이 힘이 됐을까. 첫 타석부터 투런포를 터뜨린 이승엽은 3회말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손맛을 봤다. 우월 솔로포. 개인 통산 28번째 연타석 홈런이었다. 시즌 24호 홈런. 5회 3번째 타석에서는 2루 땅볼, 6회엔 1루 땅볼, 8회엔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이날 경기 성적은 5타수 2안타 3타점. 삼성은 10-9로 승리하면서 떠나는 이승엽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줬다.
이승엽의 프로 23년 간 평균 타율은 0.302. 최다 기록을 보유중인 통산 홈런은 2개를 보태 467개(일본 시절 포함 626개)가 됐고, 최다 타점(1498개), 최다 득점(1355개) 기록도 늘렸다. 이승엽의 통산 홈런 수는 당분간 깨지지 않을 전망이다.
절친인 김제동의 사회로 진행된 은퇴식에서 이승엽은 이수빈 구단주로부터 곧 만들어질 ‘이승엽 재단’ 출연금으로 1억원을, 김동환 구단 사장으로부터 ‘베스트 5 홈런’이 새겨진 순금 액자를, 그리고 선수들로부터 순금 야구공 등을 받았다. 이승엽의 등번호 ‘36번’은 영구 결번됐다.
3일 저녁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의 은퇴식에서 동료들이 축하해주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2003년 12월 일본 진출을 선언하면서 “평생 야구할 것 같던 삼성을 떠나는데 감정이 북받쳐”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그였다. 그리고, 14년 후 ‘선수’로는 영원히 삼성과 작별하는 그는 은퇴식 도중 만원 관중 앞에서 다시 울음을 펑펑 쏟아냈다. 그의 아내도, 아들들의 눈가도 촉촉히 젖어 있었다. 구자욱, 김상수 등도 굵은 눈물을 떨궜다. 이승엽은 그의 통산 홈런 수와 같은 467명의 팬들과 악수를 한 뒤 이날까지 같은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그라운드와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야구는 제 인생이고 보물이었습니다. 야구를 제외하고 내 이름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삼성 라이온즈 선수이고 싶었고 그 꿈을 이뤘습니다. 그동안 기쁘고 슬프고 행복했고 슬럼프에 빠졌던 적도 많았는데 이제 슬펐던 생각은 다 잊겠습니다. 제 최고 선택은 야구 선수가 된 것이었습니다. ‘야구 선수’ 이승엽은 이제 야구장을 떠납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응원하는 우리 후배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함성 소리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야구와 함께할 것이고 어떤 식으로는 대한민국 야구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야구는, 정말 내 사랑이었습니다.”(이승엽)
대구/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삼성 이승엽의 발목 보호장비에 매 타석마다 다른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왼쪽부터 1회말 "삼성라이온즈에서 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3회말 "가족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6회말 "야구선수 이승엽이라 행복했습니다", 8회말 "팬 여러분 23년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대구/연합뉴스
3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이승엽 은퇴식에서 오른쪽 외야에 그려진 이승엽 은퇴 기념 그래피티가 공개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