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한화 김태균 선수가 지난 11월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도중 공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얼굴이 참 편해 보인다. ‘프로야구 선수’라는 짐을 덜어서일까. 그래도 “야구 인생 자체는 100점”이라고 한다. 매 순간 전력을 다했기에 “단 한톨의 후회도 없다”. 야구 토털로 보면 “40점”이란다. 아무래도 팀 성적 등이 걸린다.
은퇴 선수 기준(3000타석 이상)으로 보면 통산 타율(0.320)은 장효조(0.331)에 이어 2위. 출루율 역시 장효조(0.427)에 이어 양준혁과 함께 공동 2위(0.421)다. 통산 홈런은 공동 11위(311개)에 올라 있다. 케이비오(KBO)리그에서 2000안타·300홈런을 기록한 오른쪽 타자는 그가 유일하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정교한 타격 능력에 선구안, 장타력까지 갖춘 최고의 우타자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위권을 맴돈 팀 성적으로 ‘독수리 4번 타자’의 굴레에 묶여 저평가 받은 점도 있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면서 38살, 조금은 이른 나이로 은퇴를 택한 김태균을 만나 그의 야구 인생을 바꾼 말들을 들어봤다.
“자기 스윙하고 삼진 먹는 고졸 신인은 네가 처음이야.”
고교 졸업 전 참가한 남해 가을 캠프에서 이정훈 2군 타격코치가 ‘등짝 스매싱’과 함께 해줬던 말이다.
타율 5할의 천안북일고 4번 타자 출신으로 한화 이글스 1차 지명으로 입단했지만 캠프 연습경기 성적이 36타수 2안타 29삼진으로 최악이었다. “포크볼이 마구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코치들은 “쟤가 무슨 1차 지명이야”라고 수군댔다. 여린 마음에 화장실에서 혼자 펑펑 울었다.
훈련 마지막 날 샤워장에서 누군가 그의 등을 세게 때렸다. 이정훈 코치였다. 이 코치는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라며 위로를 건넸다. 김태균은 이 코치의 지시에 따라 하루 1500개 이상의 공을 때려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빈 스윙을 200개나 했다. 이 코치는 훈련이 끝나면 밥도 사주고 야구 얘기도 들려줬다. 김태균은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는 게 좋았다. 정말 힘든 시기에 프로 첫 계단을 이 코치님 덕분에 잘 밟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순하게, 아무 생각하지 말고 해. 너 어차피 4번 타자야.”
프로 5년 차 때(2006년) 김인식 감독이 해준 말이다.
전반기 성적(72경기)이 타율 0.278, 4홈런 34타점.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그를 4번 타순에서 빼지 않았다. “너무 힘들고 민망하고 팀에 미안한 마음”이 들 때 김 감독은 그에게 “사람이 맨날 잘날 수는 없다. 배리 본즈도 못 칠 때가 있고 슬럼프가 있다”며 그를 다독였다.
김 감독의 한 마디에 복잡했던 마음은 싹 정리가 됐다. 팀에 대한 책임감이나 4번 타자의 의무도 깨달았다. 김태균은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슬럼프를 빨리 극복하는 방법을 이때 알았다. 개인훈련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나만의 타격방법을 고안하고 루틴도 만들었다”고 했다. 그해 후반기(52경기) 김태균의 성적은 타율 0.310 9홈런 39타점이었다.
“너는 한화의 기둥이다. 기둥이 흔들리면 안 돼.”
김성근 감독이 2016시즌 김태균에게 전한 메시지였다.
그해 초반, 김태균은 “역대 최악으로 못했다.” 김재현 타격코치에게 타순을 내려달라고까지 했다. 그때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성근 감독이 그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너는 한화의 기둥이다…성적이 안 좋아서 힘들겠지만 네가 버텨주고 중심을 잡아줘야만 다른 선수들도 같이 힘을 낸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라.”
김태균은 “누군가가 나를 믿어주는 것이 힘이 됐다”고 했다. 김 감독은 그가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일본 병원을 알아보고 충분한 재활시간도 준 터였다. 김태균은 “솔직히 운동은 힘들었지만 감독님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면이 있었다”면서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외롭고 힘들다. 그래서 외적으로 네가 더 힘들 것’이라는 말을 처음 해준 이도 감독님이셨다.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서 뭔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 해, 김태균은 커리어 하이 성적(타율 0.365, 23홈런 136타점)을 냈다.
“김태균은 더 이상 4번 타자가 아니다.”
주변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을 때 야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8월 중순께 2군에 내려가면서 결심이 섰다. “결정이 더 늦어지면 팀도 스트레스를 받고 나한테도 더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결정이 우리 팀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개막 전 구단 인바디검사(체질량 지수)에서 선수단 전체 근육량 1위에 올랐을 만큼 여느 해보다 많은 훈련을 하고 임했던 시즌이었다.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낼 자신이 있던 시즌”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가 안 좋았다.
현역 마지막 해, 마지막 타석에 대한 미련도 있었을 법한데 그는 ‘쿨하게’ 거절했다. “한 타석이 더 간절할 후배의 기회를 뺏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야구(지바 롯데) 진출 2년의 시간을 제외하고 한화 프랜차이즈로 18시즌을 뛰면서 통산 타율 0.320, 311홈런 1358타점 장타율 0.516, 출루율 0.421의 성적을 남겼다. 등이 꽉 차 보이는 이유로 택했던 등 번호 ‘52번’은 팀 영구결번이 될 것이 확실하다.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 네가 하고픈 것을 찾아봐.”
현재의 그에게 스스로 해주고 싶은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 옥상에서, 비닐하우스에서 밤낮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던 그다. 경기가 안 풀린 날에는 밤새 복기했다. 불면증으로 꼭 경기 시작 몇십분간은 라커룸에서 잠을 자야만 했던 김태균은 은퇴 선언 뒤 아주 단잠을 자고 있다. 사실 그는 “30년 넘게 ‘야구’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야구가 재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당장은 야구에서 벗어난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김태균은 현재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야구장 밖 생활을 누리고 있다. 표정도, 몸짓도 아주 경쾌하다. 그는 “내 삶은 이제 겨우 50점이 채워졌다. 나머지 50점은 다른 인생으로 잘 채워보겠다”고 했다. 어쩌면 야구 또한 김태균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지 않을까. “넌 정말 잘했어. 이제는 조금 쉬어도 돼”라고.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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