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부산 안방 개막전
“선수들에게 즐기라고 했어요. 90분 원없이 즐긴 뒤 집에 가서 재미있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되는 거라고.”
경기에 앞서 만난 황선홍(40)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긴장을 누르려는 듯 껌을 씹고 있었다. 웃음까지 띠며 애써 여유를 보이려 했지만, 그는 “국가대표 데뷔전 때와 (떨리는 게) 비슷비슷하다”며 설레는 마음을 온전히 숨기진 못했다. 그는 “부담갖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젯밤에 잘 하라고 격려전화가 하도 많이 와서 잠을 잘 못잤다”고 했다. 그의 어깨너머로 선수대기실 벽에 붙은 6개의 종이가 보였다. ‘코너킥 수비’ ‘사이드 프리킥수비’ ‘코너킥 공격’ 등의 제목을 붙인 종이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선수들의 움직임과 자신들이 맡아야 할 선수들을 표시한 것들이다. 운동장 나가기 마지막 순간까지 선수들에게 집중을 요구한 흔적들이었다. 그는 “어느 팀이든 부산과 경기를 치러 승점 3점을 못 가져가면 충격적일 것”이라며 상대팀을 치켜세우면서도 “골을 먹더라도 많이 넣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9일 부산과 전북 현대 경기가 열린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3만2725명의 관중이 황 감독의 신고식과 스타 안정환의 ‘부산 귀환’을 반겼다. 지난해 부산의 1경기 평균관중 4088명보다 8배나 더 들어온 것이다. 소녀팬들은 전반전 끝나고 나온 가수 빅뱅의 공연 이후에도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경기시작 직전, 전광판엔 2002년 한-일월드컵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 골을 넣은 ‘선수 황선홍’의 모습을 내보냈다. 그러곤 “승리의 시작, 바로 이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승리를 만들어 가겠습니다”란 ‘감독 황선홍’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 약속 그대로였다. 부산은 전반 10분 선제골을 내줬으나 이후 한정화와 김승현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조재진까지 선발출전시킨 전북은 올 시즌 ‘우승 다크호스’로 꼽힌다. 4~5㎏을 쏙 빼고 나온 안정환은 전반 추가시각 골키퍼를 정면으로 강타한 40여m 중거리 프리킥으로 한정화의 동점골을 도우며 황 감독 데뷔전 승리를 도왔다. 안정환은 “내 프로 경기 중 최고였다”며 좋아했다.
부산 관계자는 경기 뒤 관중들이 감독과 안정환에게 박수를 치자, “정말 이런 장면을 오랜 만에 본다”며 뭉클해 했다. 황 감독은 “원래 내가 데뷔전 운이 좋다”고 했다. 그는 1988년 국가대표 데뷔전이었던 아시안컵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제결승골로 ‘황선홍’을 알렸다. 그는 이날도 역전승으로 K리그 감독 첫 발을 뗐다
부산/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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