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이 1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웸블리구장에서 열린 가봉과의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B조 최종 3차전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한국축구, 영국과 8강전
‘매경기가 결승…금메달이 목표’
홍 감독, 감춰왔던 야심 드러내
큰형님 리더십에 선수들도 ‘전의’
조직력·수비 불안 공략에 승부수
‘매경기가 결승…금메달이 목표’
홍 감독, 감춰왔던 야심 드러내
큰형님 리더십에 선수들도 ‘전의’
조직력·수비 불안 공략에 승부수
숨기고 숨겼던 속내를 마침내 드러냈다. 감추고 싶었으나 더이상 감출 수 없었다. 남들은 8강 진출로 목표를 이뤘다고 축하해줬으나 사실은 이제 시작이다. 처음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한시도 그 목표를 잊은 적이 없다. 그것은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다. 그 시작은 8강 진출이다. 그렇다면 그 종착점은?
홍명보(43)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은 1일(현지시각) 런던 웸블리구장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B조 최종 3차전에서 가봉과 0-0으로 비겨 1승2무 조 2위로 8강 진출이 확정된 뒤 연 기자회견에서 “8강 토너먼트부터는 한번 지면 그만이다. 매 경기 이겨야 한다. 그 매 경기를 이기는 것이 최종 목표다”라고 결연히 말했다. 다시 말하면 8강전, 4강전, 그리고 결승전을 모두 이기는 것이 그의 목표임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가 목표를 이루면 그것은 바로 한국 축구 전인미답의,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목표인, 바로 올림픽 금메달이다. 그는 가슴속에 이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칼’을 숨기고 여기까지 왔다.
올해 초 홍 감독은 자신이 이끄는 대표팀이 부진하자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내 마음속엔 칼이 있습니다. 그 칼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다칠 것 같으면 나 스스로를 죽이는 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팀을 위해서만 최선을 다하십시요.” 후배들은 그런 ‘큰형님’을 믿고 따랐다. 자기들을 대신해 목숨을 버린다는 홍 감독의 의지는 바로 선수 모두 스스로를 버릴 수 있는 신념으로 자리잡았다.
멕시코와의 B조 1차전(0-0)에서 기대처럼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27·아스널)과 김보경(23·카디프). 스위스와의 2차전에서도 홍 감독은 그들에게 한국 축구의 운명을 맡겼다. 결국 그런 믿음에 보답하듯, 그들은 경쟁적으로 골을 터뜨리며 2-1 승리의 주역이 됐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선수가 가장 잘할 때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좋을 때가 아니더라도 믿음을 주면 선수는 언젠가는 잘한다는 것”이라고.
선수들은 이제 안다. 자신에게 날라오는 화살을 칼이 돼 막아주던 홍 감독에게 이제는 자신들이 칼이 돼 홍 감독의 바람을 실현시켜야 할 시기가 됐다는 것을. 그 맞서야 할 날아오는 첫 화살이 바로 개최국 영국이다. 개최국 프리미엄에다가 구성원들도 쟁쟁한 프리미어리거가 주축이다. 우승을 위해 52년 만에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축구 종가’ 영국은 축구 우승을 곧 이번 런던올림픽의 성공으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생애 첫 올림픽 무대를 경험하는 38살의 ‘캡틴’ 라이언 긱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에런 램지(아스널), 크레이그 벨러미(리버풀) 등 웨일스 출신의 선수들은 8강전 경기가 벌어지는 카디프가 본고장이다.
경기가 벌어지는 밀레니엄 스타디움은 7만4500명을 수용하는 대형구장. 축구 본구장에서 홍명보호는 일방적인 응원을 펼칠 영국 관중과도 싸워야 한다. 영국은 객관적 전력에서 한국을 앞선다. 다만 여러 팀을 하나로 만든 단일팀으로 구성한 지 아직 한 달이 채 안 됐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나지만 조직력이 불안하다. 특히 수비 불안이 눈에 띈다. A조 조별리그 1차전 세네갈전에서 1-0으로 앞서다 후반 37분에 동점골을 내줬고, 아랍에미리트(UAE)와의 2차전에서도 먼저 앞서가다 후반 15분에 동점골을 내주기도 했다. 우루과이와의 3차전에서도 1-0으로 이기긴 했지만 슈팅을 20개나 허용하며 구멍 뚫린 수비망을 그대로 노출했다. 경기 뒤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인터넷판에서도 “영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전방에 서는 대니얼 스터리지(첼시)를 축으로 크레이그 벨러미, 라이언 긱스, 에런 램지와 스콧 싱클레어의 측면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살아나고 있다.
한국은 지난 세차례의 조별 경기에서 약점을 그다지 노출하지 않았다. 세 경기 모두 분위기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과의 단판 승부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은 잉글랜드를 제주로 불러 평가전을 1-1로 마무리해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며 “영국을 상대로 주눅들지 않고 맞붙으면 의외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런던/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마음은 그라운드에… 박지성(왼쪽)과 이청용이 1일(현지시각) 웸블리구장 스탠드에서 한국-가봉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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