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수 출신으로 명 감독이 드물다고 하지만 예외는 있다.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명 수비수 출신 로랑 블랑 파리생제르맹(PSG)이 감독이 그런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로랑 블랑 감독의 파리생제르맹은 12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2014~201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첼시전에서 연장 무승부(2-2)를 기록했다. 파리생제르맹은 1·2차전 합계 3-3이 됐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8강에 올랐다. 지난해 첼시에게 발목이 잡혀 4강 진출에 실패했던 아픔을 톡톡히 갚았다. 블랑 감독은 10명의 선수를 데리고 천하의 조제 모리뉴 첼시 감독을 꺾었다는 것을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파리생제르맹은 이날 전반 31분 주포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거친 태클로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하면서 내내 10명으로 싸워야 했다. 하지만 점수를 내준 뒤 곧바로 따라붙는 저력으로 연장 120분여 승부에서 최후에 웃었다. 첼시는 후반 36분 개리 케이힐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5분 만에 상대 다비드 루이스에게 헤딩골을 허용해 연장으로 몰렸다. 연장 전반 에덴 아자르의 페널티골로 다시 앞서갔지만, 연장 후반 9분 티아구 시우바한테 다시 한번 헤딩골을 내주는 실수를 범했다. 모리뉴 첼시 감독은 “코너킥만으로 두 골을 허용하는 팀은 이길 수 없다. 상대가 8강에 진출할 만하다”며 냉정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모리뉴 감독은 “졌다고 책상이나 문짝을 발로 차기보다는 이날 경기를 잘 분석해봐야 한다”며 “정규리그 우승 기회가 있고 컵대회 정상에 오르 만큼 시즌 2관왕 목표를 이룬다면 그것도 값질 것”이라고 말했다. 모리뉴 감독은 “상대가 10명이 되면서 우리 선수들이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 것 같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평했다.
블랑 감독은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브라히모비치가 퇴장당했을 때는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열정을 갖고 경기하면서 패스나 코너킥 등에서 첼시보다 더 효율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블랑 감독은 “심판위원회가 이브라히모비치에 대해 덜 가혹했으면 좋겠다. 8강 2차전에는 이브라히모비치가 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블랑 감독의 승리 아닌가?”라는 질문에, “감독은 언제나 승패에 책임을 진다. 하지만 승리를 얻어내 것은 그라운드에서 뛴 선수들”이라며 공을 돌렸다. 그는 “오늘 승리는 기분좋은 일이지만 8강에 들었을 뿐이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했지만 아직 (우승 같이) 중요한 것을 해낸 것은 아니다”고 했다.
선수 시절 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유로 2000 우승 주역이었던 블랑은 프랑스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거쳐 2013년 6월부터 파리생제르맹을 맡았다. 지난 시즌에는 리그 1위로 팀을 이끌었고, 올해 팀은 승점 1 뒤진 정규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통역 등을 거쳐 명지도자 반열에 오른 당대 최고의 사령탑 조제 모리뉴 감독을 상대로 적지에서 8강행을 이끈 만큼 기분은 더 짜릿했을 것 같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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