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오른쪽에서부터 세 번째) 선수가 팀 동료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광주FC 이종민, 부상 딛고 부활
2골 2도움…팀 중위권 이끌어
32살 윙백으로 공·수 종횡무진
“뛰고싶다는 목마름이 날 움직여”
2골 2도움…팀 중위권 이끌어
32살 윙백으로 공·수 종횡무진
“뛰고싶다는 목마름이 날 움직여”
“축구 못할 것 같습니다.”
평생 축구만 해온 선수가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의사의 진단을 들었을 때 어떻게 할까. 그냥 꺾이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용수철처럼 되튕기는 선수가 있다. 광주FC의 맏형 격인 이종민(32·사진)은 싸움닭처럼 맞받았다. “몇년이 걸려도 좋다. 난 축구한다.” 맹독성 의지는 3개월간 한쪽 다리의 절반을 굽힌 채 생활하는 고통도 달게 삼켰다. 그리고 1년 만에 복귀한 그는 6년간 무탈하게 버텨 올 시즌 ‘광주 돌풍’의 핵이 됐다.
이종민은 올드 축구팬의 뇌리에 선명한 재간둥이다. 서귀포고를 졸업한 2003년 수원에 곧바로 입단했고, 측면 미드필더로 20살 이하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성인대표팀를 거쳤다. 2008년 오른쪽 허벅지 근육 파열은 최대의 고비. 그러나 지옥의 재활을 이겨냈고, 상무와 서울을 거쳐 2014년 광주에 입단해 팀을 1부로 이끌었다. 올 K리그 클래식 5경기에서는 2골 2도움으로 팀의 중위권(6위) 유지의 일등공신이 됐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부상에서 회복해 재활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부상 공포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도 힘들고, 설령 극복하더라도 원래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종민의 열정이 무섭다”고 했다.
수원, 울산, 서울 등 명문팀의 선수라는 레이블을 떼고 지난해 2부 광주로 입단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광주FC의 이홍주 홍보팀 직원은 “시민구단 광주로 온다는 것은 그동안 받았던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종민은 “처음엔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경기에 뛰는 게 중요했다. 가족도 모두 내가 뛸 수 있는 곳을 원했다”고 했다.
패스 축구와 점유율 축구를 지향하는 광주에서 오른쪽 윙백은 가장 활동량이 많은 포지션이다. 항상 4백 수비의 한축으로 방벽을 쳐야 하고, 공격시에는 전방 깊숙이 침투해야 한다. 매 경기 팀 내 최대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다. 남기일 광주 감독은 “나이가 있지만 체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볼 센스가 남다르기 때문에 종민으로부터 공격을 풀어나간다. 순간 상황 판단이 빠르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공을 전후좌우로 움직여 나간다”고 했다. 특유의 프리킥 능력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지난달 부산과의 경기에서는 전반 명품킥으로 골을 터뜨리며 팀 승리를 도왔다. 그라운드에서 상대와의 기싸움에서 밀릴 땐 이종민이 나타나 후배들을 보호하는 등 팀의 정신적 지주 구실도 한다. 이종민은 “항상 자신감을 갖고 뛰라며 동료 선수들을 격려한다”고 했다.
이종민은 15일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을 앞두고 있다. 주말에는 성남전이 예정돼 있어 한 주에 3경기에 나서야 하는 강행군을 벌어야 한다. 선수층이 엷기 때문에 새내기까지 출전시키고 있는 남기일 감독의 고민도 크다. 남 감독은 “개인적으로 종민이한테 미안하다. 언제나 일당백으로 뛰는데 쉬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 제주전에는 휴식을 주고 주말 경기에 대비시키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남들보다 먼저 훈련장에 나와 몸을 푸는 것으로 유명한 이종민은 “뛰고 싶다는 목마름이 나를 움직여왔다. 그라운드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사진 광주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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