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에 붙인 윤영길 교수의 격려문.
‘왜 그래? 스페인 이기면 조2위다’
윤영길 교수, 숙소에 격려문 붙여
윤영길 교수, 숙소에 격려문 붙여
14일(한국시각)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E조 2차전 코스타리카와 무승부(2-2) 뒤 시무룩해진 여자축구 대표팀은 숙소인 몬트리올의 호텔에 들어서다 깜짝 놀랐다. 엘리베이터 문을 열자 ‘왜 그래? 월드컵 끝났어? 스페인 이기면 조 2위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막판 실점으로 낙담했던 선수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12층 복도 게시판에도 똑같은 격려문이 걸려 있었다. 대표팀 관계자는 선수들이 매우 감동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낯선 곳에서 선수들에게 한글 격려 메시지를 만든 이는 윤영길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스포츠심리학)다. 대표팀의 ‘멘털 코치’로 지난달 소집 때부터 동행하면서 선수들의 경기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심리상담과 심리훈련을 해왔다. 이날 다 잡은 경기를 놓친 선수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바닥을 친 듯이 적막했다. 그러자 윤 교수는 선수들이 탄 버스 대신 대표팀 승합차로 빨리 호텔에 도착해서 구상했던 내용을 A4 용지 8장에 복사해 엘리베이터 등에 부착했다. 윤 교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선수들이 지치고 기운도 없을 때 바로 효과를 내도록 도착하기 전에 바로 볼 수 있는 자리에 붙였다”고 했다. 윤 교수는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되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만든 자세한 격려글은 파일로 만들어 카톡으로 따로 보냈다.
윤 교수는 선수들이 잠자리에 들자마자 기민하게 움직였다. 다음날 엘리베이터와 숙소 층 복도의 메시지를 모두 지운 것이다. 윤 교수는 “아침에 일어난 선수들이 어제의 (무승부) 부정적 기억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새 아침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아침 선수단의 분위기는 침체에서 탈출한 모습이었다고 대표팀 관계자는 전했다. 1무1패로 조 4위가 된 대표팀은 스페인과의 3차전 결전 장소인 오타와로 이동했다. 한국이 18일 스페인전에서 이기면 최소한 조 3위를 확보해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제주 오현고 3학년 때까지 선수로 뛰다가 방향을 바꿔 서울대에 들어간 윤 교수는 선수들한테는 ‘삼촌’으로 불린다. 윤 교수는 “대표선수쯤 되면 자기관리를 할 줄 안다. 내가 오히려 선수들한테 많이 배운다”고 한다. 그래도 상담을 받은 선수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아는 척을 할 때는 반갑다고 했다. 그는 “대추가 저절로 붉어지지는 않는다. 여자축구에도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이 필요하다. 애정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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