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안주할 수 없는 구조다.”(하재훈 K리그 감독관)
“선수들의 경기 몰입도가 무섭다.”(신문선 명지대 교수)
16일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미얀마전 승리(2-0) 뒤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의 용병술이 회자되고 있다. 기성용, 박주호, 구자철 등 핵심 선수들이 없어도 팀은 고출력을 내며 습하고 더운 날씨에 부지런히 뛰어 G조 1위가 됐다. 신문선 교수는 “축구는 상대가 약하다고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선수들이 줄기차게 뛰며 기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보면서 감독의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이 안방에서 싱가포르와의 E조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것과도 대조된다. 감독 한 사람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모든 게 달라졌다. 하재훈 감독관은 “감독의 역할은 운동장 안에서 선수들의 헌신을 이끌어내는 것인데,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리그에서 잘 뛰는 선수를 뽑는다. 이 원칙은 파급효과가 크다. 평등하게 열린 무한 경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미얀마전 최전방 공격수 이정협과 후반 투입된 이용재, 미드필더 이재성과 정우영은 슈틸리케 감독이 올해 발굴한 선수들이다. 이재성은 선제 결승골을 넣으면서 이청용을 위협하고 있고,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도 소화하면서 남태희를 밀어냈다. 미드필더 정우영은 기성용의 백업 선수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정협은 원톱 자리를 놓고 갑자기 등장한 J리그 2부의 이용재(V바렌 나가사키)와 경쟁을 펴야한다. 하재훈 감독관은 “과거엔 이름 있는 선수들의 유효기간이 길었다. 먼저 뽑혔고, 먼저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대표 선수 유효기간은 슈틸리케 감독 등장 이래 하루로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1월 아시안컵에서 맹활약한 김진현이 이번엔 김승규한테 밀렸다. 리그 경기나 대표팀 소집훈련 과정에서 김승규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문선 교수는 “선수들은 훈련을 하면서 동료들을 파악한다. 자기 포지션에서 누가 나은지 감독보다 먼저 안다. 감독이 기준대로 선수를 출전시키면 신뢰가 쌓인다”고 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선수들은 평소 자기 몸 관리에 집중한다. 대표선수가 됐다고 잠시 방심하면 언제든 탈락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됐다. 프로 선수한테 국가대표는 꿈이다. 자신의 경력 뿐 아니라 몸값과 직결된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선수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며 선수들에게 자존감을 불어 넣으며 의욕을 자극해 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미얀마전 때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선수들과 일일히 손뼉을 마주쳤다. 일종의 스킨십인데, “방심하지 말라” “진지하게 싸워라”라고 강조해온 감독의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재훈 감독관은 “신뢰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을 전달하면 선수들이 열심히 뛰게 된다”고 말했다.
2000년대 독일 유청소년 대표팀을 육성해온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 32살의 노장 염기훈이나 새로운 얼굴의 수비수 정동호는 리그에서 잘했기 때문에 뽑혔다. 하재훈 감독관은 “대표팀 선수들이 모두 불안해졌다. 반면 더 많은 프로팀 선수들이 대표선수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게 됐다. 그게 슈틸리케 효과”라고 말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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