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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축구·해외리그

“멘털코치 비법? 얘기 들어주는거죠”

등록 2015-06-25 18:57

대표팀 심리 담당 윤영길 교수
“1시간 만에 뚝딱 만든 것도 있지만, 어떤 건 사흘이 걸렸다. 심리는 참 미묘하다.”

맞춤하게 만든 짧은 메시지 하나로 선수들의 기를 팍팍 끌어올린 윤영길(사진) 한체대 교수는 각급 대표팀 최초의 멘털 코치다. 과거엔 감독이 맡거나, 선수들 스스로 해오던 심리 관리 분야를 새롭게 개척한 것이다. 이번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 윤 교수는 감정 기복에 휩쓸리기 쉬운 선수들의 마음을 잡아주면서 첫승과 16강 진출을 일구는 데 숨은 공로자다.

대표적인 것이 14일 코스타리카와의 조별리그 두번째 경기 무승부(2-2) 뒤 만든 ‘왜 그래? 월드컵 끝났어? 스페인 이기면 조 2위다!’라는 메시지였다. 선수들은 기적같이 스페인을 꺾고 16강에 올랐다. 윤 교수는 25일 “코스타리카 경기 뒤 선수들의 표정이 잿빛이었다. 어떻게든 그 분위기를 뒤집기 위해서 1시간 만에 문구를 생각해 냈다”고 말했다. 이렇게 미국 평가전, 조별리그 3경기, 16강전까지 5경기 전후에 만든 작품은 총 15개였다. 가장 중요한 경기가 됐던 스페인전을 앞두고는 3일간 고민했다고 한다.

분위기 처질때마다 기살리기 문구
여자월드컵 첫 16강행 ‘숨은 공로’

고교시절 축구선수 경험도 도움
“선수가 무슨 생각하는지 잘 알아”

메시지만이 전부는 아니다. 뛰지 못한 선수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도 중요하다. 윤 교수는 “23명 가운데 11명밖에 뛰지 못한다. 나머지 선수 가운데 4명은 한번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그런데 11명이 뛰는 게 아니라 23명 모두가 뛴다는 느낌이 들도록 팀 분위기를 만드는 게 멘털 코치의 일”이라고 했다. 달리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윤 교수는 “마음이 아플 때는 들어줄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 풀릴 때가 있다”고 했다. 경기에 나간 선수들은 부담과 압박을 느낀다. 그때마다 삼촌처럼 다가가 말을 건넸다. 윤 교수는 “100% 선수들의 고민을 덜어주지는 못했지만, 선수들이 좌절하거나 폭발하지 않고 팀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제주 오현고 시절까지 축구를 한 것도 선수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윤 교수는 “선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포지션별 특성이나 경기의 흐름, 상대팀까지 살펴가면서 선수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여자축구팀과 함께 생활한 지가 100일이 넘어 선수들과의 경계는 사라졌다. 주말 보충까지 하면서 전공 수업을 마무리한 윤 교수는 생동감 있는 현장에서 이론과 실제를 접목할 기회를 준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지도부에 감사의 말도 전했다.

아쉬움도 남은 대회였다. 윤 교수는 “프랑스전에 대비해 공을 많이 들였는데, 생각처럼 안 됐다”고 돌아봤다. 윤 교수는 선수들에게 기죽지 말 것을 주문했다. 프랑스가 조별리그 마지막 멕시코전에서 5골을 넣고 올라온 게 오히려 프랑스에 독이 될 수 있었다. “프랑스로선 선제골이 중요했는데, 우리가 너무 일찍 실점하면서 프랑스가 경기를 주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번 월드컵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것으로 봤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이 준 충격은 대표선수뿐만 아니라 어린 선수들에게도 유럽팀하고 붙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었다. 이번 월드컵이 한국의 여자선수들한테 심리적으로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다는 대리 경험의 효과를 주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마치 유전자처럼 사람들의 머리에 남아서 집단적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전 패배 뒤 “그래, 아쉬워.^^ 그렇지만 도전은 충분히 아름다웠어, 2019…”라는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던 이유다. 물론 한국 여자축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윤 교수는 “여자축구에 대한 반짝 관심이 사라진다고 해도 여자축구의 풀뿌리 토양부터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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