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선의 눈]
이번 동아시아컵 축구대회의 성과를 명확히 평가해야 한다. 대회 전 대표팀 구성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의 오만으로까지 이야기하는 미디어와 전문가가 있었다. A매치 출전하지 않은 선수들이 대거 뽑혔고, 출전했다고 하더라도 경험이 일천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칫 중국, 일본, 북한에게 패할 것을 우려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이번 동아시아컵 대회를 소화했다. 마지막 북한전에서 골을 넣지 못하고 무승부를 기록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 골결정력이 부족하다고 얘기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역대 북한전에서 이날처럼 일방적인 경기를 한 사례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을 복기해보자. 당시에 한국은 북한의 체력과 역습, 강한 투지에 고전을 하다가 경기 막판 결승골을 넣고 우승을 했다. 그 경기뿐 아니라 역대 남북전에는 경기력을 떠나 분단의 역사와 냉전의 분위기가 항상 우리 선수들의 발과 몸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이번 동아시아컵 북한전에서는 한국이 극단적으로 경기를 주도했다. 7대3, 또는 6대4 정도로 평가할 정도로 한국은 전술적으로, 기술적으로 압도했다. 한국은 현대 축구를 소화했다. 북한은 70~80년대의 구식 축구를 했다. 한 마다로 뻥축구를 한 것이다. 북한이 자랑하는 기동력, 힘, 강한 몸싸움 등은 한국 선수들에게 미리 읽혔다. 한국은 수비-허리-공격 3선의 밸런스가 시종 유지가 됐고, 이에 따라 압박은 자동으로 90분간 이뤄졌다. 좌우 날개 공격수인 이재성과 이종호, 미드필더인 김승대, 권창훈, 장현수의 창의적인 플레이는 구식 축구를 하는 북한을 일방적으로 수세로 몰았다.
한국의 골 결정력 부족이 아니라, 북한이 운이 좋았던 경기였다. 북한 골키퍼 리명국은 신들린듯한 선방을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트라이커인 호날두나 메시도 일방적인 우위 속에 공격을 할 때라도 상대 골키퍼가 귀신처럼 막아내면 골을 넣지 못한다. 북한전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번 대회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켜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한국은 해외파 의존도가 높은 팀이었다. 이제 해외파와 국내파 선수의 치열한 경쟁구도로 갈 수 있는 젊고 희망적인 국가대표 재원들을 K리그에서 대거 수혈했다. 이재성, 이종호, 김승대, 권창훈, 정우영, 임창우, 이주용, 정동호 등 무수히 많은 새 얼굴들은 해외파 선수들이 게으르거나 대표팀에 기여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주전을 꿰찰수 있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중앙 수비 불안도 김영권-김기희로 짜여진 센터백 라인이 매우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수비를 하면서 많이 해소됐다. 둘과 호흡을 맞춘 수비형 미드필더 장현수의 활약도 앞으로 월드컵 예선을 맞는 한국팀의 수비 안정성을 높이는 요소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대회를 통해 외국인 감독의 효과를 톡톡히 느꼈다. 만약 슈틸리케 감독이 아니었다면, 북한전이나 일본전, 중국전에서도 꼭 이겨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경험이 많은 국내파 선수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렸을 가능성이 있다. 2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1차전 중국전 선수들을 대거 교체한 것도 눈에 띄었다. 이번 동아시아컵은 순위에 대한 것보다 대표팀에 훨씬 많은 변화와 탄력을 준 대회로 평가하고 싶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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