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특별기고
부산지검은 외국인 선수 영입 때 몸값 부풀리기로 수억원을 횡령하고, 2013~2014년 K리그 심판 4명에게 모두 6천여만원의 금품을 건넨 전 경남FC 안종복 대표를 3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기소된 4명의 심판 중 1명은 과거 최우수심판으로 뽑히기도 했다. <한겨레>는 축구계의 근본적 자성을 촉구하는 이영표 해설위원의 특별기고를 싣는다.
축구경기장을 구성하고 있는 터치라인, 골라인, 하프라인 등은 모두 선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라인들은 축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와 규칙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경기장의 모든 라인들이 상황에 따라 나의 편이 되기도 하고, 상대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축구공이 상대를 맞고 라인 밖으로 나가면 우리 편에게 공격권, 즉 ‘권리’가 주어지고, 우리 팀 몸에 맞은 공이 라인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공을 상대방에게 돌려주는 ‘의무’를 다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축구경기장의 라인은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와 상당히 닮은 점이 많습니다.
내가 경기장 안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이 나의 ‘의무’라면 상대가 경기장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은 나의 ‘권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충분히 누려야 할 나의 ‘권리’는 곧 내가 나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우리의 ‘의무’는 곧 우리의 ‘권리’가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2015년 대한민국 축구에도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최고의 권리는 축구를 사랑하는 모두가 축구를 정직하고 깨끗하게 즐길 권리입니다.
몇년 전 스스로 땀과 눈물을 부정한 몇몇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했고 그들은 영구제명됐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K리그에 4명의 심판들이 돈을 받고 모두가 누려야 할 축구의 권리를 훼손시키는 일이 드러났습니다. 어쩌면 몇몇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조용히 넘기는 것이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에 처해 있는 K리그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이번 심판매수 사건은 극소수 심판들의 개인적인 일탈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K리그를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K리그의 권위와 명예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과거 30년 동안 엄청나게 잃어버렸던 권위와 신뢰를 되찾아오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심판들은 정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99%조차도 100%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각본이 없어야 할 드라마에 만약 단 1%의 각본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스포츠가 아닙니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가 마무리됐다고 해서 이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더 큰 문제는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정직한 심판들의 고의성 없는 단순 실수조차도 주변에서 의혹과 의심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질 다툼과 불신입니다. 프로와 아마를 가리지 않고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이 지긋지긋한 심판에 대한 불신. 이 불신을 근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프로축구연맹 스스로가 모든 심판과 팀으로 자체 조사를 확대하고, 완전히 심판 문제를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모든 축구팬들에게 보여주는 일입니다. 연맹과 축구협회의 이러한 노력이 팬들의 의심이 믿음으로 바뀔 때까지 계속되지 못한다면 앞으로 또 다른 구단주의 강력한 의혹 제기 앞에서 연맹의 상벌위원회가 내리는 어떤 형식의 징계도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프로축구연맹이 최근 <한국방송>(KBS)의 공중파 중계를 이뤄내고, 리저브리그를 부활시키고, 실관중 집계를 하는 등 수없이 많은 좋은 정책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연맹을 방문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연맹 직원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축구팬들의 신뢰회복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정책과 열성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에 각본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스포츠는 이미 스포츠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선수들이, 심판들이, 연맹이, 언론이 각자의 위치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곧 각자의 권리를 찾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의무’가 곧 ‘권리’라면, 지금 프로축구연맹이 누려야 할 최고의 권리, 그것은 무엇입니까?
‘한국방송’ 해설위원
이영표 ‘한국방송’ 해설위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