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11일(현지시각)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4차전에서 0-1로 진 뒤 침통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고개 숙인 손흥민이 옆에 있다. 테헤란/연합뉴스
삐~, 삐~, 삐~.
슈틸리케호에 비상벨이 울렸다. 한배를 타고 가는 선수들과 선장이 엇박자다. 이래서는 목표 지점까지 순항하기 힘들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11일(현지시각) 테헤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4차전 이란전 패배(0-1) 뒤 선수를 비난해 파장이 일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우리에게는 카타르의 세바스티안 소리아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다”며 선수 탓을 했다. 매우 솔직하고 직설적인 불만이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통상 감독은 경기에 지면 “나의 전술적 실패다. 선수들은 잘 뛰었다”며 자기 탓으로 돌린다. 한 경기 결과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선수들을 다독인다. 카타르 선수와의 비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선수단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날 상대방에게 꽁꽁 묶여 유효슈팅을 기록하지 못한 손흥민은 “감독님이 다른 선수까지 들먹이는 건…”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축구 전문가들은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팀 전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다. 다른 팀 선수를 지목해서 자기 선수들이 부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슈틸리케 감독은 12일 급히 진화에 나섰다. 그는 “경기 직후 인터뷰라 감정이 올라왔다. 준비했던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화가 나 있었다. 소리아 이름을 거론한 것은 그의 저돌성과 돌파력에 관해 선수들과 얘기했던 것인데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이런 얘기들이 나와서 와전이 되고, 오해가 생기면서 안 좋을 때 흔드는 부분이 없지 않다. 나는 항상 선수단을 존중하고 인간적인 면을 존중하면서 해왔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경기장 안에서는 선수들이 서로를 자극하고 치열하게 해야 한다. 위기가 닥친 것은 사실이고, 이를 잘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란과의 경기는 대표팀 최악의 경기 중 하나다. 명지대 스포츠기록분석학과의 경기 기록지를 보면, 한국은 점유율(45%-55%), 슈팅수(4-13), 유효슈팅(0-3), 코너킥(1-6) 등에서 밀렸다. 이란 원정 무승(2무5패) 징크스는 이어졌고, 역대 맞전적은 9승7무13패가 됐다. 최종예선 A조에서도 이란(3승1무), 우즈베키스탄(3승1패)에 이어 3위(2승1무1패)다. 다음달 15일 안방에서 열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5차전은 “월드컵 본선행을 위한 결승전”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기면 조 2위를 확보해 남은 5차례의 경기에서 선두권 경쟁을 할 수 있지만 지면 캄캄해진다.
전문가들은 팀 재정비와 경기력 향상을 위한 전술적인 해법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톱이 마땅치 않을 경우 제로톱이나 투톱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좌우 풀백이 불안하면 국내 K리그 선수들을 기용할 수도 있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이 2차 예선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최종예선은 경기의 상대가 다르다. 2차 예선 때 선수 풀을 충분히 확보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국내 득점 경쟁에서 앞서가는 공격수나 리그에서 잘 뛰는 수비수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