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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면 해주는 사인, 팬들에겐 평생 추억”

등록 2016-11-29 16:06수정 2016-11-29 21:51

통통스타〕 K리그 FC서울 데얀
외국인 선수 최단기간 150골
팀 위해 희생해도 시즌 13골
“자나 깨나 축구 생각 행복”
FC서울의 공격수 데얀이 23일 경기 구리의 지에스(GS)챔피언스파크에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경기를 앞둔 마음 가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구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FC서울의 공격수 데얀이 23일 경기 구리의 지에스(GS)챔피언스파크에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경기를 앞둔 마음 가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구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기를 앞두면 마음은 오직 하나에 모인다.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길까?”

묶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헤어밴드도 두르지 않은 FC서울의 데얀 다먀노비치(35). 23일 경기도 구리의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난 그는 그라운드의 적토마가 아니었다. 깊은 눈과 부드러운 미소는 구도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축구 얘기가 나오자 말은 총알처럼 빨라졌고, 억양도 높아졌다. 7살 때 시작한 축구는 “질리지 않는”, 오히려 “축구 없이는 살 수 없는” 일심동체의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데얀은 이번 시즌 외국인 선수 최단기간 150골(총 154골)을 돌파했다. 과거 포항의 라데, 성남과 수원에서 뛰었던 샤샤를 추월해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지칠 줄 모르는 골 행진의 비결은 앞둔 경기에 대한 집중력. 그는 “상대 수비수가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치고 나갈지, 어떤 식으로 패스할지 계속 연구한다.” 두 자녀나 집사람도 데얀의 집중력을 방해할 수 없다.

공을 잡는 순간 상대를 피해 돌아서는 순간적인 센스, 뒤에도 눈이 달린 듯 동료에게 절묘하게 찔러주는 패스, 골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결정력 등 타고난 재능이 더해져 파괴력은 커진다. 그는 “주변 선수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패스할 때는 늦는다. 보지 않고 패스를 해준다. 그 비결은 ‘느낌’이다. 달리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K리그는 유럽의 힘의 축구나 남미의 기술축구, 일본의 패스 축구와 다르다. 그는 “K리그는 피지컬”이라고 규정했다. 90분 내내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하고, 누가 덜 지치느냐의 싸움이다. 늘 체격이 좋은 젊은 수비수들과 맞서야 하는 데얀은 경기 뒤 온몸이 멍투성이라고 한다. 발로 차고, 점프해서 누르고, 힘으로 막아 세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형 축구는 희한하게 강하다. 데얀은 “일본 축구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에 몰두한다. 패스는 깔끔하다. 하지만 한국 프로축구팀이 일본에 지지 않는다. 나는 일본팀과 싸웠을 때 거의 백전백승을 했다”고 자랑했다.

데얀은 “한국에 온 뒤 엄청나게 성장했다. 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결정적인 골을 넣은 것도 한국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겸손해했다. 피지컬 축구에 익숙해진 데얀은 2008~2015년 몬테네그로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그는 “내 나이가 35살이어서 요즘은 체중이 좀 불어난 81~82㎏이다. 그러나 일본 같은 데서 뛰면 40살까지는 뛸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4~15년 두 해 동안 중국 무대를 경험하면서 한·중 축구의 차이도 경험했다. 그는 “중국의 광저우팀은 최고의 선수를 불러모은 팀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중국팀 선수들의 기량이 한국보다 나은 것 같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시즌이 끝나고 두 달여 휴가를 받을 때도 쉬지는 않았다.

훨씬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올해 서울로 유턴한 것은 팬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경기 뒤 방송 인터뷰가 있을 때도 그는 “팬들한테 먼저 인사하고 오면 안 되냐?”고 묻는다. 사인을 요구하는 아이들한테는 온종일 시간을 내줄 자세가 돼 있다. “나한테는 5초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한테는 평생의 기억이 된다.” 홈경기 뒤 자신의 땀에 젖은 유니폼을 팬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면 왜 그가 FC서울의 대표 선수인지 짐작게 해준다.

FC서울의 공격수 데얀(9번)이 9월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전북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FC서울의 공격수 데얀(9번)이 9월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전북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데얀은 서울팬만의 선수는 아니다. 그는 “내가 돈을 벌고 먹고사는 것도 한국에서 축구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팬들의 롤모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정 가서 열심히 뛰는 것도 상대 팀 팬들한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열심히 뛰는 것은 프로로서의 기본이다.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눕고 싶거나 자고 싶을 때도 훈련을 빼먹지 않는다. 그것이 내 일이다.”

보스니아에서 태어났지만 몬테네그로 축구대표팀에서 뛰었고, 세르비아에 거주지를 두고 있지만 한국에서 7년 이상 뛴 인터내셔널은 문화적 포용력이 뛰어나다. 그에겐 국경도 없고, 이념도 없다. 축구는 그의 내면과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다. 외국인 선수끼리 경쟁하지도 않는다. 그는 “나는 한국에서 오래 뛰었다. 개인적인 욕심을 내지 않는다. 팀이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라운드에서 쉴 새 없이 동료들에게 얘기하고, 아드리아노한테 기회를 양보하는 이유다. 황선홍 서울 감독은 “데얀의 몫은 기량뿐만이 아니다. 팀에 대한 헌신은 선수단 전체의 사기나 정신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집사람이 좋아하는 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축구화에 어린 딸과 아들의 이름을 새긴 것을 보면 천생 남편이고 가장이다. 상대 선수와 부닥치면 때로 흥분하기도 한다. 27일 수원과 벌인 축구협회컵 결승 1차전 때는 상대 선수에게 태클을 하다 경고를 받아 2차전에는 출전할 수 없다. 데얀은 “흥분도 분노도 금세 잊는다. 축구는 쉴 새 없이 진행되는 경기”라고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축구 상황처럼 그의 축구 인생은 늘 변화무쌍했지만 큰 부상 없이 잘 버텨왔다. 올 정규리그에서도 13골(득점 3위)을 넣었다. 시즌을 마감한 그는 내년 말 계약이 종료되면 어떤 길을 갈지 모른다. 그는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열심히 뛴다. 나는 프로”라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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