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와 체력에서 열세를 보이는데,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보완하겠다.”
2011년 포항제철중 축구부 주장이던 15살 소년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체격은 다소 왜소했지만, 눈빛만큼은 프로 못지않게 날카로운 선수였다. 9년 뒤 소년은 약속을 지켰다. 그는 강력한 힘과 체력을 바탕으로 유럽 무대를 누볐고, ‘황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제는 수많은 유럽 명문 구단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황희찬(24·FC잘츠부르크) 이야기다.
■ 제2의 황선홍 꿈꾼 축구 신동
황희찬은 유소년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9년 의정부 신곡초 시절 제21회 차범근 축구상 대상을 받으며 이동국(4회), 박지성(5회), 기성용(13회) 등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유소년 양성에 힘쓰던 포항 스틸러스 쪽 관심을 받아 포항제철중으로 진학했고 중학 축구를 휩쓸었다. 2011년 대한축구협회 남자 중등부 최우수선수를 받았고, 15살 이하 대표팀에 발탁돼 주전 공격수로 뛰었다.
의정부 신곡초 시절 황희찬. 차범근 축구상 심사위원회
포철공고에 진학한 황희찬은 16살 이하 대표팀에 발탁됐다. 2012 아시아축구연맹(AFC) 16살 이하 챔피언십에 나선 그는 북한을 상대로 해트트릭, 일본을 상대로 선제골 등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비록 팀은 우승팀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국제무대 경쟁력을 확인한 자리였다. 그는 “제2의 황선홍”을 꿈꿨다.
■ 유럽 무대에 도전한 10대 황희찬
황희찬은 프로 데뷔를 앞둔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 지원했다. 준비된 특급 공격수 데뷔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유소년 시절부터 그를 키워온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당시 황선홍 감독을 포함한 타 구단 감독들도 “꼭 지도해보고 싶은 공격수”라고 기대를 표했다.
그러나 황희찬의 선택은 유럽 무대 진출이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계약을 맺었고, 2부리그 위성구단 FC리퍼링으로 임대 이적했다. 갑작스러운 유럽행에 포항 구단은 배신감을 토로했고, 국내 축구 팬들의 비판도 쏟아졌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했던 황의조와 황희찬. 연합뉴스
황희찬이 팬들의 마음을 돌린 건 2016년 리우올림픽. 2015년 올림픽대표팀에 발탁된 황희찬은 예선부터 맹활약했고, 한국을 세계 최초 8회 연속 올림픽 진출 고지에 올렸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상의 탈의 세리머니와 부진 논란이 있었지만, 결승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금메달을 결정짓는 골을 뽑으며 우승까지 차지했다.
■ 판 데이크 제치고 더 큰 세계로
소속팀에서도 황희찬의 질주는 이어졌다. 2015년 잘츠부르크 1군에 데뷔한 그는 출전시간을 차츰 늘려갔다. 결국 황희찬은 올 시즌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차며 맹활약했다. 특히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리버풀 수비수 피르힐 판 데이크를 제치고 득점에 성공한 장면은 일품. 29일 리그에서 1골 1도움주기 활약으로 팀의 조기 우승 확정에 기여한 그는 올 시즌 총 38경기 16골 21도움주기를 기록했다.
황희찬(가운데)과 FC잘츠부르크 선수들. FC잘츠부르크 누리집 갈무리
이제 황희찬은 더 넓은 무대를 꿈꾼다. 현재 RB라이프치히(독일), 리버풀, 에버턴(잉글랜드) 등 유럽 명문 구단 이적설이 나온다. 이미 제시 마시 감독도 “그의 행운을 빈다”며 이적을 인정한 상황이다. ‘황소’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