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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기 들고 응원하며 느꼈던 ‘동포애’ 잊을 수 없어요”

등록 2020-08-17 20:50수정 2020-08-18 02:37

‘태극기 아저씨’ 박용식 응원단장
‘응원에는 은퇴가 없다’ 에세이집
1994년 월드컵부터 국외원정 59회
“2008베이징올림픽 남북 응원 감동”
얼굴 가득 태극 무늬를 그려넣고 태극기 조끼를 입고 응원해 ‘태극기 아저씨’로 불리는 박용식 아리랑 응원단장이 최근 에세이집을 펴냈다. 사진 박용식씨 제공
얼굴 가득 태극 무늬를 그려넣고 태극기 조끼를 입고 응원해 ‘태극기 아저씨’로 불리는 박용식 아리랑 응원단장이 최근 에세이집을 펴냈다. 사진 박용식씨 제공

축구 선수도, 감독도 아니다. 하지만 월드컵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봤을 법한 얼굴이다. 다만 민낯이 아닌 얼굴 가득 태극 무늬를 그려 넣은 모습이어야 한다. 박용식(57) 아리랑 응원단장 이야기다. <한겨레>는 지난 8일 전화를 통해 ‘영원한 응원단장’ 박씨를 만났다.

박 단장은 한마디로 “응원에 미친 사람”이다. 지금까지 국외 원정 59번, 경비만 4억∼5억원에 이른다. 마지막 응원은 지난해 6월 폴란드.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맞붙은 20살 이하 월드컵 결승전이다. 그는 “도쿄올림픽이 60번째 원정 응원인데, 코로나19 때문에 기록 달성이 늦어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가 처음 응원을 시작한 건 1994년 미국월드컵. 박 단장은 신문에서 월드컵 원정 응원단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다. 가수 김흥국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300명이 모였다. 목이 터지라 응원을 했고, 희열을 느꼈다. 한국에 돌아와 응원부장을 맡게 됐다. 한창 방송 활동으로 바빴던 김흥국을 대신해 그가 국외 원정 응원을 도맡았다. 26년 응원 인생의 시작이었다.

박 단장은 ‘태극기 아저씨’로도 유명하다. 월드컵 때마다 얼굴 가득 그려 넣은 태극 무늬 덕분이다. 1997년 ‘도쿄 대첩’ 때는 태극기로 조끼를 만들어 입었다가 국기 훼손 혐의로 조사까지 받았다. “양복 입은 남자들이 다방으로 데려가서 이것저것 물었어요. 상황을 설명하니 ‘죄송하다’며 돌아갔죠.”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도경기장에서 태극 조끼를 입은 박용식(맨오른쪽) 단장이 코리아 응원단과 함께 응원하고 있다. 그는 북한 선수들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얼굴에 태극 무늬를 그리지 않았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도경기장에서 태극 조끼를 입은 박용식(맨오른쪽) 단장이 코리아 응원단과 함께 응원하고 있다. 그는 북한 선수들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얼굴에 태극 무늬를 그리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런 그가 한반도기로 조끼를 만들어 입은 적이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다. 2007년 남북은 10·4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베이징올림픽 공동응원단을 꾸리기로 합의했다. 경의선을 타고 서울~신의주~베이징을 통과하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합의는 무산됐다. 박씨는 10·4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만든 민간 차원의 ‘코리아 응원단’을 이끌었다. 그때 한겨레신문사도 응원단을 후원했다.

박 단장은 북한 선수를 응원할 때는 한반도 조끼를, 한국 선수를 응원할 때는 태극 조끼를 입었다. “유도 응원을 갔는데, 한 경기장에 우리 선수와 북한 선수가 같이 있어요. 경기 때마다 깃발 바꾸고 옷도 갈아입고 정신이 없었죠. ‘분단이 안 됐다면, 이렇게 응원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때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며 동포애를 몸으로 느꼈다고 한다. “북한 응원단이 우리가 말을 걸어도 계속 대답이 없었는데, 떠나는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더라고요. 기뻤죠.”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코리아 응원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북한 응원단 앞을 통과하고 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코리아 응원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북한 응원단 앞을 통과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 단장은 사회공헌에도 열심이다. 생업으로 대전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 그는 한 보육원을 31년째 후원했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돕고 있다. 그는 “그렇게 키운 학생 중에 현직 부장판사도 있다”라며 웃었다. 현재 그는 국민포장 후보에 올라, 공적심사를 받고 있다.

박 단장은 지난 5월 에세이집 <응원에는 은퇴가 없다>를 펴냈다. 26년간 응원 경험을 담은 책으로, 판매 수익의 절반을 기부한다. 그는 앞으로 강연을 다니며 “희망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마무리도 응원단장답게 했다. “코로나19와 폭우 피해로 힘들지만, 대한민국 힘냅시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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