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숭실이 팀 자체훈련에서 서브를 받기 위해 온몸의 신경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있다.
여자탁구 새별 김숭실
부모님품 그리울때…라켓이 친구
‘만년 2등’ 설움 딛고 첫 우승 감격 꽃보다 아름다운 게 사람꽃이라고 했던가? 탁구계 ‘얼짱스타’ 김숭실(26·KRA)을 보면 그렇다. 마치 눈밭에 핀 봄꽃같다. 탁구인생도 극적인 요소가 있다. 2000년 실업무대 데뷔 이래 꼭 6년 만인 2006년 12월. 생애 처음으로 전국대회인 에스비에스(SBS) 챔피언전 여자단식에서 우승했다. ‘만년 2등’의 꼬리표를 처음 뗀 것이다. “얼떨떨하기도 했어요.” 지난 4일 성남 국군체육부대 체육관에서 만난 김숭실은 “첫 우승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KRA팀은 8일 시작되는 60회 전국남녀종합탁구대회에 대비해 상무의 남자선수들을 상대로 훈련을 했다. 늘 우승만 지켜보다가 “팬들의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됐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느꼈다고 한다. 현정화 KRA 감독은 “늦었지만 드디어 탁구에 눈을 떴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 거든다. 1981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숭실은 어렵게 탁구를 시작했다.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밑에서 컸다. 대구 봉덕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탁구부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탁구는 유일한 동반자였다. “할머니와 오빠·언니가 있어 서로 의지가 됐지만, 사춘기 때는 오빠와 많이 울기도 했어요.”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그는 라켓을 휘둘렀다.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꿋꿋하게 살자”라고 수없이 다짐했다. 어려서부터 이미 쉽지 않은 삶의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타고난 체력과 세상을 밝게 보는 눈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탁구를 할 수 있는 게 행복합니다. 하루 하루에 늘 감사합니다.” 김숭실은 손목 힘이 강하다. 강력한 드라이브샷을 연속적으로 구사하는 능력은 국내 여자선수 중 최고로 정평이 나 있다. “힘을 빼고 있다가 공을 칠 때면 배의 힘과 손목의 힘을 결합시킵니다.” 그는 파워드라이브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독한 맛’이 없는 게 단점이다. 유남규 남자대표팀 감독은 “국내 여자선수들은 누가 언제 우승할지 모르는 춘추전국시대”라며 “국제대회에 나가면 상대방에게 쉽게 읽히는 전형이 김숭실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숭실은 2005년 상하이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개인전) 때 생애 첫 국가대표로 나갔다가 초반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지난해에는 대표팀에 들지도 못했다. 그러나 26살의 나이에 다시 한번 대표팀 탑승의 목표를 잡았다. 이번 종합선수권에서 16강에 들어 2월 대표팀 선발전에 출전하는 게 1차 목표다. 이어 5~8명으로 구성될 대표팀에 들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갈 꿈을 부풀리고 있다. 현정화 감독은 “우승을 경험하면서 달라졌다. 공이 오는 길을 볼 줄 알면서 여유를 갖게 됐다”고 김숭실을 설명한다. 경기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자신감이 확 올라가 고비를 침착하게 넘어서는 능력도 좋다며 기대해달라고 한다. 국내 1인자 김경아(30·대한항공)도 26살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대기만성형인 김숭실은 이제 다시 발동을 걸었다. “할머니와 감독님, 팀을 생각해서라도 마음 독하게 먹으려고 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독기를 충전해 가는 김숭실의 새해 비상을 그려본다. 성남/글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만년 2등’ 설움 딛고 첫 우승 감격 꽃보다 아름다운 게 사람꽃이라고 했던가? 탁구계 ‘얼짱스타’ 김숭실(26·KRA)을 보면 그렇다. 마치 눈밭에 핀 봄꽃같다. 탁구인생도 극적인 요소가 있다. 2000년 실업무대 데뷔 이래 꼭 6년 만인 2006년 12월. 생애 처음으로 전국대회인 에스비에스(SBS) 챔피언전 여자단식에서 우승했다. ‘만년 2등’의 꼬리표를 처음 뗀 것이다. “얼떨떨하기도 했어요.” 지난 4일 성남 국군체육부대 체육관에서 만난 김숭실은 “첫 우승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KRA팀은 8일 시작되는 60회 전국남녀종합탁구대회에 대비해 상무의 남자선수들을 상대로 훈련을 했다. 늘 우승만 지켜보다가 “팬들의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됐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느꼈다고 한다. 현정화 KRA 감독은 “늦었지만 드디어 탁구에 눈을 떴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 거든다. 1981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숭실은 어렵게 탁구를 시작했다.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밑에서 컸다. 대구 봉덕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탁구부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탁구는 유일한 동반자였다. “할머니와 오빠·언니가 있어 서로 의지가 됐지만, 사춘기 때는 오빠와 많이 울기도 했어요.”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그는 라켓을 휘둘렀다.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꿋꿋하게 살자”라고 수없이 다짐했다. 어려서부터 이미 쉽지 않은 삶의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타고난 체력과 세상을 밝게 보는 눈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탁구를 할 수 있는 게 행복합니다. 하루 하루에 늘 감사합니다.” 김숭실은 손목 힘이 강하다. 강력한 드라이브샷을 연속적으로 구사하는 능력은 국내 여자선수 중 최고로 정평이 나 있다. “힘을 빼고 있다가 공을 칠 때면 배의 힘과 손목의 힘을 결합시킵니다.” 그는 파워드라이브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독한 맛’이 없는 게 단점이다. 유남규 남자대표팀 감독은 “국내 여자선수들은 누가 언제 우승할지 모르는 춘추전국시대”라며 “국제대회에 나가면 상대방에게 쉽게 읽히는 전형이 김숭실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숭실은 2005년 상하이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개인전) 때 생애 첫 국가대표로 나갔다가 초반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지난해에는 대표팀에 들지도 못했다. 그러나 26살의 나이에 다시 한번 대표팀 탑승의 목표를 잡았다. 이번 종합선수권에서 16강에 들어 2월 대표팀 선발전에 출전하는 게 1차 목표다. 이어 5~8명으로 구성될 대표팀에 들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갈 꿈을 부풀리고 있다. 현정화 감독은 “우승을 경험하면서 달라졌다. 공이 오는 길을 볼 줄 알면서 여유를 갖게 됐다”고 김숭실을 설명한다. 경기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자신감이 확 올라가 고비를 침착하게 넘어서는 능력도 좋다며 기대해달라고 한다. 국내 1인자 김경아(30·대한항공)도 26살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대기만성형인 김숭실은 이제 다시 발동을 걸었다. “할머니와 감독님, 팀을 생각해서라도 마음 독하게 먹으려고 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독기를 충전해 가는 김숭실의 새해 비상을 그려본다. 성남/글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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