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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과 대학강사의 무모한·즐거운 도전

등록 2007-01-11 18:23수정 2007-01-12 08:57

‘너무 재밌어요!” 여자아이스하키대표팀의 이윤영(왼쪽)과 고혜인이 11일 오후 태릉선수촌 아이스링크에서 스틱을 잡은 채 활짝 웃고 있다.
‘너무 재밌어요!” 여자아이스하키대표팀의 이윤영(왼쪽)과 고혜인이 11일 오후 태릉선수촌 아이스링크에서 스틱을 잡은 채 활짝 웃고 있다.
겨울AG 출전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고혜인·이윤영
“중학교 입학 앞두고 공부 ‘열라’(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국가대표가 돼서….” 13살 고혜인(전주 증산초6)이 웃으며 말한다. 그래서 묘안을 짰다나? 모텔에서 합숙하는 혜인이는 훈련이 없는 아침에 무료 영어 과외수업을 받는다. 선생님은 고려대 범죄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친 이윤영(30). “중학교 2학년 올라가는 언니들 틈에 끼여 배워요.”

17살 차이인 둘은 한국여자아이스하키대표팀 동료이기도 하다. 28일 중국 창춘에서 개막하는 겨울아시아경기대회에 함께 나간다. 둘다 ‘재미’로 시작해, 정식 여자아이스하키팀이 하나도 없는 한국에서 태극마크까지 달게 됐다.

‘여자는 약하다’ 편견 싫어
학교 팀서 남자들과 운동
“아무리 센 팀도 안무서워요”

혜인이는 최근 광운중 남자팀과의 연습경기에서 퍽에 맞아 손목에 깁스를 했다. “수비수라 퍽을 팔로 막았는데, 엄청 아팠어요.” 얼마나 연습했는지 두꺼운 장갑이 찢어져 있었다. 아이스하키의 매력을 물었더니, “격렬해서 너무 좋다”고 했다.

“남자 애들하고 축구하면 살짝만 차도 ‘여자가 잘한다’고 치켜세우는 게 싫었어요. 남자는 무조건 세고, 여자는 약하다는 편견이 싫었거든요.” 발레도 배웠는데 “너무 답답했다”고 했다. 태권도·수영도 몇개월하다 흥미를 잃었다.


“아이스하키는 몸을 부딪히잖아요. 운동 뒤 날아갈 듯한 가벼운 느낌이 좋아요. 장비로 무장하는 것도 특별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아이스하키팀에 들어가 남자들과 섞여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국가대표를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동호회 등에서 활동하는 여자아이스하키 인구는 80명 남짓. 그 중 잘하는 선수를 수소문하는데, 혜인이는 가장 어린 나이로 21명 대표팀에 뽑혔다.

김익희 여자대표팀 감독은 “아침에 텔레비전으로 만화를 볼 때는 어린 아이같다”고 말한다. 이번 겨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카자흐스탄 일본 중국 북한과 풀리그를 벌이는데, 한국을 10골 이상 이길 수 있는 강팀들이다. “비행기를 처음 탄다”는 혜인이에게 수비수로서 걱정되지 않냐고 물었다가 혼쭐이 났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인들인데요 뭘. 두려웠다면 운동 안하는 게 낫죠.”

박사과정 도중 덥석 입문
논문도 미룬 채 매력에 푹
“우린 엘리트 아닌 사회체육”

이윤영은 11일 2시간 동안 연습경기를 끝낸 뒤 점심도 거른 채 발걸음을 학교로 재촉했다. 세미나가 있어서다. “벌써 시작했는데…. 교수님께 좀 늦는다고 얘기했어요.” 2005년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지난해 고려대와 배재대에서 사회통계 과목을 가르쳤다. 아이스하키를 하느라 논문은 2년째 내지 못했다. 운동과도 담을 쌓았던 그는 박사과정을 시작한 2003년 덥석 스틱을 잡았다.

“공부만 해야 했기에 뭔가 역동적인걸 하고 싶었어요. 놀거리를 찾다가 아이스하키 클럽팀에 들어갔어요.” 일주일에 이틀씩 스케이트와 하키를 걸음마부터 배운 그는 2004년 10월 태극마크를 달 정도로 성장세가 빨랐다. “제가 국가대표가 될 줄 생각도 못했죠.”

대표팀은 낮에 2시간, 밤에 2시간 훈련한다. 증권회사 사무직 등 직장인들과 절반이 초·중·고 학생들로 이뤄져 다 같이 모이는 날이 거의 없다. “태릉선수촌에서 우릴 무시하는 선수들이 많죠. 우린 엘리트체육이 아니라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사회체육이거든요.”

그렇다고 대충 경기하고 오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자아이스하키팀은 1999년 강원, 2003년 아오모리 아시아경기대회에 나가 7전 전패했다. 117골을 내줬고, 골은 고작 3골만 넣었다. 이윤영은 “일본과 경기해서 0-25(1999년), 0-20(2003년), 0-12(2006년 3월 아시안컵), 0-8(9월 친선교류전)로 점점 점수를 줄였어요. 이번엔 더 줄여야죠.”

“어디 하나 부러지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할거예요. 한국 여자아이스하키가 느리지만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줘야죠.” 이윤영은 큰 눈에 웃음을 잔뜩 머금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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