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 야구팀 랩스 선수들이 아마야구 선수 출신의 부원으로부터 번트요령을 배우고 있다. 랩스 제공
게임업체 사장·카지노 딜러·교사·은행원…
훈련만은 프로팀처럼…야구 유망주 후원도
훈련만은 프로팀처럼…야구 유망주 후원도
[현장] 겨울훈련하는 사회야구팀 ‘랩스’
7회말 8-4로 앞선 상황. 눈앞에 승리가 보였다.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은 창단 첫 리그 단독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손수 맞춘 챔피언 모자를 나눠가지며 희희낙락거렸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구원투수가 난조를 보였다. 1점차까지 점수차가 좁혀지자 급히 마무리투수를 올렸지만 한껏 달아오른 상대팀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결국 끝내기 안타를 맞았고, ‘챔피언’이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모자만 허망하게 남았다(사회인 야구는 7회까지 한다).
2006년 11월 ‘천우 3부리그’ 결승전에서 사회인야구팀 랩스(Raps:영화 <쥬라기공원>의 공룡 랩터를 줄인 말)는 그렇게 첫번째 우승을 날렸다. “너무 억울해서 밤새 잠도 못잤지만 그런 게 ‘야구’라는 것을 새삼 느낀 한판”이었다.
지난 21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국대부속중학교. 랩스 선수들이 꽁꽁 언땅에서 멍까지 들 정도로 넘어지며 다이빙캐치를 하고 있었다. 마치 지난날의 어이없는 패배를 지우기 위한 몸부림 같았다. 내야수비 연습을 하고, 토스배팅도 하고, 짬을 내서 미니경기를 하는 모습은 프로선수들의 겨울훈련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다만, 미니경기 때 ‘자장면’ 내기를 하고, 화단을 넘어간 상대의 홈런성 타구를 2루타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것이 아마추어다울 뿐이다.
“여자친구랑 스키타러 가기로 했는데 취소하고 왔다”는 한창훈(31·영동고 교사)씨는 “친구 때문에 1997년부터 사회인야구를 시작했는데, 하루 야구를 하고 나면 1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싹 달아난다”고 했다. 그는 교생실습을 나갔다가 아마추어 야구부 출신의 조동우(25·연예인 매니저)씨와 장진호(25·호주연수중)씨를 꼬드겨 랩스에 입단시키기도 했다. 랩스에는 이들 외에도 블리자드코리아 사장에서부터 카지노딜러, 회계사, 은행원, 기술자, 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사회인 야구팀이라는 말 그대로 랩스 팀 자체가 하나의 작은 사회가 된다.
쉬는 날 훈련을 할라치면 가족들의 눈치가 이만저만 아니다. “야구 때문에 이혼할 뻔했다”(강영식씨·회사원)고 농담식으로 말할 정도. 때문에 추운 날임에도 가족을 동반해 운동장에 나타난 이들도 눈에 띄었다. 기업 사회인야구팀이 아니라 순수동호회라서 돈도 만만찮게 든다. 1년 회비가 40만원이고, 지난해 9월부터 야구 유망주(장충고1)를 매달 30만원씩 후원하면서 추가로 회비가 발생했다. 그래도 “야구에서 얻은 즐거움을, 야구에 보답하자는 뜻에서 부원들의 성원은 아주 뜨겁다”는 게 홍운표씨의 말이다.
치고 달리고 던지고 넘어지고…. ‘야구’라는 이름으로 모인 그들의 겨울은 아주 뜨겁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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