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그의 오른팔에는 무려 네겹의 보호대가 감겨있었다. 팔목을 돌리기도 힘겨웠다. 보호대가 무거워 오른쪽 어깨는 금세 아파왔다. 그래도 절묘한 도움주기도 하고, 멋진 3점슛도 날렸다. 그렇게 경기를 치른 다음날 아침에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엄습한다.
여자프로농구 천안 국민은행 김영옥(33) 얘기다. 그는 1월22일 안산 신한은행과의 경기도중 오른팔이 부러졌다. 두차례나 수술을 받은 중상이었다. 그런데 불과 36일만에 다시 코트에 섰다. 뼈가 완전히 붙지 않았는데도 석고붕대(깁스)를 풀었다. 일반인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 병원에선 “뼈가 다시 부러질 수도 있다”며 말렸다. 하지만 그는 “한번 부러졌는데 두번 부러지면 어떠냐”며 농구공을 다시 잡았다. 그의 투혼은 4강의 갈림길에서 백척간두에 놓인 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국민은행과 4강을 다투고 있는 부천 신세계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 그런데 외국인 선수 케이티 핀스트라(25)가 1월15일 경기도중 코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시즌 개막 불과 열흘 만의 일이었다. 정인교 감독은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핀스트라는 얼굴보호 마스크를 쓰고 출전을 강행했다. 그의 투혼을 지켜 본 정 감독은 “남녀 외국인 선수 중 최고”라고 칭찬했다. 핀스트라는 최근에야 무거운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남자프로농구에선 고려대 94학번 동기 현주엽(32·창원 LG)과 신기성(32·부산 KTF)이 수술도 마다한 채 코트에 나서고 있다. 왼쪽무릎 부상 중인 현주엽은 수술을 받으면 4월 플레이오프 때나 출장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팀의 2위 다툼이 치열하기 때문. 그는 요즘 통증을 참아가며 출장을 강행하고 있다. 신기성도 충수염(맹장염)으로 수술대에까지 올랐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수술하면 적어도 2주 동안 경기에 뛸 수 없었다. 어려운 팀 사정을 생각하면 안될 일이었다.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경기를 마치고 나면 피로가 몰려온다”고 힘겨워했다.
남녀 프로농구가 정규리그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치열한 순위다툼은 마치 ‘전쟁’같다. 그 속에서 부러지고 찢어져도 코트에 나서는 선수들 투혼이 눈물겹다. 마치 포연 곁에서도 질기게 살아나는 잡초처럼 말이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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