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국가대표 2차선발전
결승 연장서 이원희에 ‘효과’ 따 우승
48연승 역사 쓴 ‘빗당겨치기’ 무력화
결승 연장서 이원희에 ‘효과’ 따 우승
48연승 역사 쓴 ‘빗당겨치기’ 무력화
왕기춘(20·용인대)이 푸른색 유도복을 입고 섰다. 여드름이 군데군데 나있는 앳된 그가 2007 세계유도선수권 우승자다. 반대편에 이원희(27·마사회)가 흰색 도복을 입고 섰다. 수술받은 오른발목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저 발로 유도 그랜드슬램(올림픽·아시아경기대회·세계선수권·아시아선수권 우승)을 작성했다. 같은 체급에서 두 강자를 동시에 가진 한국 유도계는 행복한 것인가, 불행한 것인가?
이원희는 2005년 왕기춘을 한판승으로 눕혔다. 당시 왕기춘은 17살이었다. 너무 어렸다. 지난해 3월. 왕기춘이 이원희를 이겼다.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한 이원희는 지도 3개를 받아 졌다. 그땐 이원희의 오른발목이 많이 아팠다. 그는 이 경기 후 수술을 결심했다.
세번째 만남. 경기 초반 이원희가 발을 잡아 돌리기를 시도했다. 왕기춘이 가볍게 빠져나왔다. 마치 “형! 예전에 내가 아니야”라는 얘기 같았다. 왕기춘은 2006 도하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이원희의 훈련을 보조해주던 선수였다. 그러면서 이원희의 기술을 배웠고, 이원희의 약점을 익혔다. 이번엔 왕기춘이 자신의 주특기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이원희는 꿈쩍하지 않았다. 휴대전화까지 끊어버리고 훈련에 몰두했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었다.
서로 도복잡기로 기회를 엿봤지만 누구도 도복을 덥석 내주지 않았다. 5분은 역시 부족했다. 거친 숨을 들이쉬던 둘은 연장에 들어갔다. 16초가 흐른 즈음. 이원희가 빗당겨치기를 걸었다. 그는 이 기술로 48연승 신기록을 썼고, 세계 매트를 평정했다. 그렇다면 넘어가야 하는데 왕기춘은 호랑이가 돼 있었다. 왕기춘은 그런 이원희를 되치기로 밀었다. 이원희의 오른쪽 대퇴부가 살짝 매트를 찍었다. 효과. 연장에선 작은 기술이라도 먼저 딴 선수가 이긴다. 두 선수의 1승1패 균형이 그렇게 깨졌다.
왕기춘은 18일 전남 광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34회 회장기전국유도대회 겸 2008 국가대표 2차선발전 남자 73㎏급 결승에서 이원희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진표는 둘이 결승에서 맞붙도록 짜였다. 우승점수 15점을 보탠 왕기춘은 국가대표 선발점수가 48점이 돼 이원희(38점)를 크게 앞서며 베이징행에 성큼 다가서게 됐다. 한국유도 사상 첫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이원희가 그 꿈을 이루려면 5월7일에 열리는 최종선발전에서 꼭 우승해야 한다. 최종선발전 1위는 30점을 얻는다. 최종대회에서 이원희가 왕기춘을 이겨 30점과 지도자(10점)·강화위원(10점)들이 주는 점수까지 싹쓸이한다면 극적으로 베이징 티켓을 쥘 수도 있다.
이원희가 경기 뒤 “깨끗이 승복한다”면서도 “최종 선발전에서 우승하면 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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