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유도 윤익선 감독
‘유도스타’ 김재엽은 알지만,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 국가대표 선발 결승전에서 김재엽에게 아깝게 판정패한 당시 한살 아들을 둔 서른살 선수까지 기억하진 못한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국가대표로 뽑히고도, 동서 이념대립으로 대회 불참이 결정돼 서방국가들끼리 치른 ‘대체올림픽’에서 남자유도 60㎏급 금메달을 땄으나, 아예 ‘대체올림픽’조차 기억 못 하는 이들이 많다. 1997년 세계유도선수권에서 남자유도 사상 처음 3개의 금메달을 만들어냈는데, 그 쾌거 뒤에 한 감독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팬들의 관심이 미치진 않는다.
지난 14일 베이징올림픽 여자유도 78㎏급에서 정경미가 동메달을 딴 순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장감독이 매트 곁에서 잠시 고개를 들어 감회에 젖었다. 선수 시절 올림픽에 ‘한’이 맺혔던 윤익선(54) 여자대표팀 감독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매트에서 나오는 정경미의 손을 잡고 어깨를 툭, 툭 두드려줬다.
윤 감독은 1997~98년 남자감독을 거쳐 2004년 11월 여자유도 수장으로 부임했다. 조민선·정성숙 등 ‘황금세대’들이 2000년 초 은퇴한 뒤 국제무대에서 고전하는 여자유도를 살려달라는 중책을 맡은 것이다. 그 첫 시험대였던 2006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를 빚어냈고, 이번 대회에서 2000 시드니올림픽(동메달 3개) 이후 8년 만에 여자유도 올림픽 메달을 선사했다. 유도계 주변에선 그를 ‘고집불통’ 감독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고집스러운 열정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뒷짐지고 가르치지 않고, 직접 선수들의 훈련상대가 되어주며 똑같이 훈련하는 ‘선수같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7일 동안 유도경기를 치르면서 목소리가 다 쉰 그는 “힘들게 훈련하고 최선을 다한 우리 여자선수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유도회가 8년 만의 올림픽 동메달 대신, 금·은메달을 만들지 못한 여자유도 성적에 아쉬움을 갖고 있어 윤 감독의 거취는 불투명한 분위기다.
베이징/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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