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대표팀 막내 김온아가 지난 6일 전국실업핸드볼대회가 열린 전남 무안 목포대체육관에서 몸을 풀며 팬들이 좋아하는 특유의 그 미소를 짓고 있다. 올림픽에서 ‘눈물의 감동’을 만들고 왔지만, 김온아 뒤편 관중석엔 빈자리가 많다. 무안/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송기자 조피디의 스포츠다큐 <7> 여자핸드볼 대표팀 막내 김온아
마트일 하는 엄마는 TV보며 눈물
언니와 여동생까지 ‘핸드볼 한길’
고향가니 ‘무안의 딸’ 펼침막 펄럭 2년 전, 소 두 마리가 오던 날 할머니는 눈을 자꾸 비볐다. 좋은 날 눈물이 앞서서다. 그 어린 것이 실업팀 선수가 되면서 외양간을 채워준 것이다. 할머니는 “저게 ‘우리 온아다, 내 새끼다’ 생각하며 밥 주고, 똥 긁어주고 그랬지요”라고 했다. 그 암소가 8월23일 암송아지를 또 낳아 외양간 식구가 여섯마리로 늘었다. 손녀딸 온아의 동메달결정전 전반전에 송아지가 쑥 나왔으니, 동네 어른들도 “손녀딸이 복덩이”라고 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잔치만 시번(세번) 했어요. 시번”하며 좋아했다. “돼지 잡았는데, 그 돼지만 170근이여. 떡도 하고, 동네에서 한번, 무안읍에서 두번”이라고 했고, 손녀딸이 줬다는 청와대 시계와 아까워 뜯지도 못한 영양제까지 손가방에서 꺼내 보이며 자랑했다. 엄마는 그날도 ‘마트’에 서서 중계를 봤다. 이곳에서 물건 정리하는 아줌마가 된지 12년째. “딸 골넣는 것 보고, 손님오면 물건 갖다주고” 왔다갔다하며 “속으로 울면서” 경기를 봤다는 것이다. 딸은 월 10만원짜리 ‘사글세’에서 살던 가족에게 조그만 읍내 집도 사줬다. “온아가 잘할수록, 기죽지 않고 할수록 기특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고 한 건 목수 노동일을 하는 아빠와 엄마가 넉넉히 챙겨주지 못해서다. 여동생 선화(백제고 3년)는 훈련지 마산에서 언니 경기를 봤다. 왼손잡이인 선화는 “큰언니(김가나·은퇴)와 둘째언니가 모두 핸드볼 훈련하느라 늘 집에 혼자있고 그러니까”, “언니들만 하나”하며 핸드볼을 했다. 그런데 핸드볼청소년대표가 됐다. “어디가서 꿀리지 말라”고 매월 용돈 20~30만원을 쥐여주는 온아 언니가 동메달을 따더니, 웃음을 지어보였다. “대표팀 막내여서 내색도 잘 못하고, 힘드냐고 전화걸면 ‘나 괜찮아’하던 언니 마음을 잘 아니까” 동생 선화는 그 웃음을 보고 오히려 울어버렸다.
‘서희 엄마’ 오영란이, ‘순구 엄마’ 오성옥이 다 눈물지으며 코트를 빠져나올 때 20살 김온아(벽산건설)는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어깨 걸고 코트에서 빙빙 돌 땐 엉엉 우는 언니들 보면서 저도 울었어요. 그러면서 친구 배민희랑 같이 ‘언니들 울지마세요. 수고하셨어요’라고 말씀드렸죠. 동메달도 쉬운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훈련한 거 보상받았다고 생각하니까 웃고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림픽을 떠나는 언니들의 눈물은 이제 어린 후배들의 그 희망섞인 웃음으로 넘어가게 됐다. 오성옥의 조카와 나이가 같은 김온아는 바로 오성옥이 놓고 간 국가대표 센터백 자리를 이어가야 한다. 김온아는 고향 전남 무안 목포대에서 열리는 전국실업핸드볼대회(4~9일)에 다시 섰다. 주민들과 무안군에서 만든 “무안의 자랑” “무안의 딸”이란 펼침막이 읍내 곳곳에 걸렸다. 임영철 여자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소속팀 벽산건설 언니들이 “무안에서 용났다”고 놀리는 통에 김온아는 얼굴을 붉혀야 했다. 하루 100여명만 찾던 김온아 미니홈피에도 동메달 경기가 끝난 뒤 9천여명이 몰려들었다. 귀여운 외모에다, 키(167㎝)가 유럽선수들보다 작은 데도 중앙에서 씽씽 슛을 날리던 모습에 팬이 늘어난 것이다. “경북 안동에 사는데 김온아 선수 보려고 전날 여기서 자고 체육관에 왔다”는 여학생은 옷과 화장품을 내밀며 “옷 꼭 입어주세요”라고 했다. 김온아는 소속팀 언니들 물을 챙겨주면서도 등을 내밀며 옷에 사인을 해달라는 팬들 때문에 더 분주했다.
김온아는 이런 관심을 보며 “이게 뭔가?”하고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올림픽 전에 재경기 때도 관심이 늘었다가 사그라들었는데, 그때보다 오래가겠지만 이게 얼마나 갈까하는 생각도 한다”고 했다. ‘달콤한 행복’을 맛보고 있는데, “그 달콤함이 언제 빠질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일 벽산건설과 용인시청 경기에선 종료 직전 벽산건설 골키퍼 오영란이 ‘7m 던지기’를 막아내 극적으로 이기는 명승부를 펼쳤지만, 체육관엔 관중 100여명이 채 되지 않았다. 선수들은 연습공간이 없어 주차장에서 공을 주고받았고, 복도에서 러닝을 했다. 핸드볼 전용구장 하나 없는 현실이 바뀔 조짐이 또, 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김온아는 “경기장이 휑하잖아요. 많이 찾아오시면 좋은데…”라고 했다. 김온아는 사
인할 때 사인펜을 꾹꾹 눌러 꼭 ‘여자핸드볼 김온아’라고 적는다. “여자핸드볼을 알리고, 김온아가 국가대표 센터백 여자핸드볼 선수라는 것도 알리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건 도대체 우린 언제까지 또 올림픽에서 영화 ‘우생순’ 1·2편, 속편을 찍고 와야만 하는 걸까 하는 ‘막내’의 궁금증처럼 들리기도 한다.
무안/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언니와 여동생까지 ‘핸드볼 한길’
고향가니 ‘무안의 딸’ 펼침막 펄럭 2년 전, 소 두 마리가 오던 날 할머니는 눈을 자꾸 비볐다. 좋은 날 눈물이 앞서서다. 그 어린 것이 실업팀 선수가 되면서 외양간을 채워준 것이다. 할머니는 “저게 ‘우리 온아다, 내 새끼다’ 생각하며 밥 주고, 똥 긁어주고 그랬지요”라고 했다. 그 암소가 8월23일 암송아지를 또 낳아 외양간 식구가 여섯마리로 늘었다. 손녀딸 온아의 동메달결정전 전반전에 송아지가 쑥 나왔으니, 동네 어른들도 “손녀딸이 복덩이”라고 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잔치만 시번(세번) 했어요. 시번”하며 좋아했다. “돼지 잡았는데, 그 돼지만 170근이여. 떡도 하고, 동네에서 한번, 무안읍에서 두번”이라고 했고, 손녀딸이 줬다는 청와대 시계와 아까워 뜯지도 못한 영양제까지 손가방에서 꺼내 보이며 자랑했다. 엄마는 그날도 ‘마트’에 서서 중계를 봤다. 이곳에서 물건 정리하는 아줌마가 된지 12년째. “딸 골넣는 것 보고, 손님오면 물건 갖다주고” 왔다갔다하며 “속으로 울면서” 경기를 봤다는 것이다. 딸은 월 10만원짜리 ‘사글세’에서 살던 가족에게 조그만 읍내 집도 사줬다. “온아가 잘할수록, 기죽지 않고 할수록 기특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고 한 건 목수 노동일을 하는 아빠와 엄마가 넉넉히 챙겨주지 못해서다. 여동생 선화(백제고 3년)는 훈련지 마산에서 언니 경기를 봤다. 왼손잡이인 선화는 “큰언니(김가나·은퇴)와 둘째언니가 모두 핸드볼 훈련하느라 늘 집에 혼자있고 그러니까”, “언니들만 하나”하며 핸드볼을 했다. 그런데 핸드볼청소년대표가 됐다. “어디가서 꿀리지 말라”고 매월 용돈 20~30만원을 쥐여주는 온아 언니가 동메달을 따더니, 웃음을 지어보였다. “대표팀 막내여서 내색도 잘 못하고, 힘드냐고 전화걸면 ‘나 괜찮아’하던 언니 마음을 잘 아니까” 동생 선화는 그 웃음을 보고 오히려 울어버렸다.
77살 할머니는 손녀딸 실업대회 경기를 보러오면서도 우황청심원을 먹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온아가 소 두 마리 사줬는데, 온아를 위해 소를 30마리까지 늘리려면 10년 정도 더 살아야 할 텐데”라며 두 손을 모았다.
여자핸드볼대표팀이 동메달 경기를 하던도중, 바로 이 암송아지가 태어났다. 김온아의 할머니는 “이 놈이 그날 나왔어요. 집안이 잘 될라고 그런지 암소가 새끼도 잘 낳는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여동생 선화(가운데)가 언니 경기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선화는 “올림픽 끝나고 무안에 온 언니가 팀에서도 막내급이다보니 체육관 바닥을 닦고 있었는데, 그때 달려가 언니를 껴안고 ‘보고싶었어’라고 인사했다”며 웃었다.
엄마는 딸이 3·4위전을 할 때도 마트에서 이렇게 앞치마를 두르고 일하면서 경기를 봤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마트에서 일한다. 마트 앞에도 사장님이 걸어준 김온아 축하 펼침막이 걸려 있다.
‘서희 엄마’ 오영란이, ‘순구 엄마’ 오성옥이 다 눈물지으며 코트를 빠져나올 때 20살 김온아(벽산건설)는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어깨 걸고 코트에서 빙빙 돌 땐 엉엉 우는 언니들 보면서 저도 울었어요. 그러면서 친구 배민희랑 같이 ‘언니들 울지마세요. 수고하셨어요’라고 말씀드렸죠. 동메달도 쉬운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훈련한 거 보상받았다고 생각하니까 웃고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림픽을 떠나는 언니들의 눈물은 이제 어린 후배들의 그 희망섞인 웃음으로 넘어가게 됐다. 오성옥의 조카와 나이가 같은 김온아는 바로 오성옥이 놓고 간 국가대표 센터백 자리를 이어가야 한다. 김온아는 고향 전남 무안 목포대에서 열리는 전국실업핸드볼대회(4~9일)에 다시 섰다. 주민들과 무안군에서 만든 “무안의 자랑” “무안의 딸”이란 펼침막이 읍내 곳곳에 걸렸다. 임영철 여자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소속팀 벽산건설 언니들이 “무안에서 용났다”고 놀리는 통에 김온아는 얼굴을 붉혀야 했다. 하루 100여명만 찾던 김온아 미니홈피에도 동메달 경기가 끝난 뒤 9천여명이 몰려들었다. 귀여운 외모에다, 키(167㎝)가 유럽선수들보다 작은 데도 중앙에서 씽씽 슛을 날리던 모습에 팬이 늘어난 것이다. “경북 안동에 사는데 김온아 선수 보려고 전날 여기서 자고 체육관에 왔다”는 여학생은 옷과 화장품을 내밀며 “옷 꼭 입어주세요”라고 했다. 김온아는 소속팀 언니들 물을 챙겨주면서도 등을 내밀며 옷에 사인을 해달라는 팬들 때문에 더 분주했다.
새로운 핸드볼 스타로 떠오른 김온아가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팬들에게 둘러싸여 사인을 해주고 있다. 다른 팀 언니들이 지나가며 “온아 인기폭발이네”하며 축하를 보내줬다.
송기자 조피디의 스포츠 다큐
사진/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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