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호가 15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08 추석 전국 체급별장사씨름대회 백호급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품에 안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한씨름협회 제공
기라성같은 선배들 잡고 생애 첫 장사 등극
“꿈만 같아요. 이 황소 트로피를 꼭 손에 쥐고 싶었거든요.”
4강에서 ‘존경하는 선수’라는 김용대(32·현대삼호중공업)와 샅바를 맞잡았다. 지난 7월 결혼한 김용대는 한라장사 최다우승(14회) 기록을 가진 이 체급 강자다. 별명이 ‘탱크’인 김용대를 2-1 역전승으로 눕혔으니 그가 ‘꿈’이라고 표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15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08 추석 전국체급별장사씨름대회 백호급(105㎏이하·과거 한라급) 결승전. 이영호(23·기장군청)는 지난해 고등부·대학부·일반부 모든 선수들이 나와 겨루는 전국선수권 역사급에서 1위를 했다. 대단한 성적이지만, 그건 아마씨름이었고, 민속씨름 무대는 또 달랐다. 지난 6월 문경장사에서 그는 7품(8위)에 그쳤다. 김태우 기장군청 감독은 “성격이 내성적인데다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이영호는 경남 진주에 사는 부모님도 경기장에 오지 않게 했다. 멀기도 하지만 또 성적이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탓이었다. 체육관에 온 수원에 사는 이영호의 이모는 “언니(이영호 어머니)가 영호 부담을 줄지 모르니 경기 전에 아는 척하지 말고 끝난 뒤에나 인사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영호는 결승에서 우형원(용인백옥쌀)에게 첫 판을 뺏긴 뒤 내리 세판을 따내 지난해 실업팀 입단 이후 처음 민속씨름 장사가 됐다. 네번째판에서 오른무릎을 다친 우형원이 위에서 누르면서 밀고들어오다 왼무릎이 모래에 닿아 꽃가루가 떨어지자, 김태우 감독은 모래판에 올라와 이영호를 쓰러뜨리는 세리머니로 우승을 함께 나눴다. 상금 1천만원.
이영호는 “지난해 추석대회 때 엄지손가락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한 뒤 아직도 아프지만 힘들어도 참고 훈련해 좋은 자리에 온 것 같다. 이영호하면 전국의 씨름팬들이 알아주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영호의 장사탄생으로 백호급은 세대교체의 물살을 타게 됐다. 애초 이 대회 우승후보였던 ‘변칙기술의 달인’ 모제욱(33·마산시체육회)은 16강에서 떨어졌고, 김용대는 4강 고비를 넘지 못했으며, 지난 6월 문경장사 김기태(28·현대삼호중공업)는 1회전에서 떨어졌다. 이영호의 등장으로 백호급 모래판에 또 한명의 호랑이가 가세한 것이다.
수원/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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