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 미국에 꽃피운 국제태권도대회
전영인 사범, 사재 털어 올해로 16년째
미국에서 16년 동안 사비를 털어 국제태권도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미국 태권도대표팀 감독을 지낸 전영인(55·사진 오른쪽) 사범이 그 주인공이다.
전 사범은 지난 7~8일 올해로 16회째를 맞은 2009 국제태권도 페스티벌을 치르느라 이틀내내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대회 준비에 눈코 뜰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태권도 초단인 큰딸 지희(28·미국이름 앤·가운데)와 태권도 3단의 막내아들 윤식(23·미국이름 알렌·왼쪽), 그리고 전 사범의 태권도장 수제자들 역시 거의 잠을 못 잔 채 행사를 거들었다. 덕분에 올해도 성황리에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지금은 미국 태권도계에서 ‘마스터 전’하면 모르는 이가 없지만, 낯선 땅에서 자리를 잡기까진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전북 군산고와 인천체대에서 태권도 선수로 활약한 그는 해병대에서 전역한 뒤 1980년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그는 “처음 10년 동안 목수와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고생도 참 많이 했다”며 “그래도 언제나 꿈은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민 10년 만에 로스앤젤레스에서 2개의 태권도장을 열며 꿈을 이룬 그는 90년 스페인에서 열린 대학선수권대회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태권도계로 돌아왔다.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자신이 지도한 스티븐 로페스가 남자 68kg급에서 한국의 신준식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도 지켜봤다.
국제태권도대회는 처음엔 미국 대표팀과 세계 올스타팀이 맞대결을 벌이는 ‘월드 태권도 페스티벌’로 펼쳐지다가 97년부터 엘에이(LA)오픈으로 대회 이름이 바뀌었다. 지난해부터는 국가대항전뿐만 아니라 클럽이나 도장 중심의 팀 경기로 발전시켜 전 세계 태권도인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도록 문을 넓혔다.
몇 해 전부터는 잘 나가던 태권도장 한 곳도 닫은 채 대회를 꾸려온 그는 “덕분에 지금은 국제태권도연맹(WTF)이 공인해 세계순위 포인트가 주어지는 대회로 발전했다”며 밝게 웃었다. 전 사범은 “올해는 경기 침체와 신종 플루 때문에 참가 선수 규모가 적을 것같아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1000명이 넘는 선수단이 참가했다”며 “태권도를 통해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외교사절의 심정으로 자부심을 갖고 대회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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