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41회 대통령기 전국남녀고교농구대회 예선에서 경복고 김현식(왼쪽)과 용산고 황윤종이 공을 다투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맞수열전] 고교농구 경복고·용산고
1·2위 다투는 40년 라이벌
“동문들도 관심 높아 부담” “결승전에 온 것 같아.” 관중석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지난 5일 저녁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제41회 대통령기 전국남녀고교농구대회 경복고-용산고의 경기는 예선전이었지만 결승전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경기장은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과 학부모들의 응원소리로 가득찼다. 2쿼터까지 엎치락 뒤치락 하던 경기는 결국 90-64, 용산의 압승으로 끝났다. 지난 4월 서울시장기대회에서 68-83으로 경복에 진 것을 설욕하는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기고 승리가 확실해지자 용산 벤치는 들뜬 표정으로 모두 일어섰고, 경복 벤치는 힘없이 자리를 지켰다. 두 학교의 맞수의식은 과거 사립 ‘명문고’가 존재하던 시절 ‘공부 라이벌’에서 시작됐다. 연세대-고려대처럼, 두 학교의 라이벌 의식은 자연스레 농구로 옮겨져 40여년을 이어왔다. 양교의 본격 대결은 70년대부터 시작됐다. 60년대 경복고와 휘문고, 배재고가 지배하던 고교 농구계에서 1970년 이보선(58·현 한국농구연맹 경기감독관), 박광호(55·현 한국농구연맹 심판위원장), 신선우(53·전 창원 엘지 감독)의 용산이 대통령기대회 정상에 서며 이름을 알렸다. 박광호씨는 “경복과 붙을 때면 당시 응원단들 신경전도 대단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분위기가 선수들 사이에도 자연스레 생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유재학 사건’은 두 학교의 라이벌 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79년 용산중학교를 졸업한 ‘천재가드’ 유재학(46·울산 모비스 감독)은 용산고 진학이라는 ‘당연한’ 길 대신 경복고를 택해 용산고를 온통 들끓게 했다. 당시 용산중 감독이자 이후 용산고 감독을 지낸 양문의(65·현 한국농구연맹 경기분석위원)씨는 “제자를 뺏긴 것은 유재학이 유일하다”며 아쉬워했다. 60년대 경복고 선수로 뛰었던 방열(68·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씨는 “60년대가 경복과 휘문이었다면 70년대 이후 경복과 용산이 한국 고교농구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고 평가했다.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조직력과 정신력이 용산의 강점이었다면, 큰 신장과 화려한 개인기는 경복의 자랑이었다. 양문의 감독의 혹독한 훈련 아래 용산은 ‘농구 대통령’ 허재를 앞세워 80년대 초반 22연승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용산 전성시대’를 열었다. 90년대 초반은 동갑내기 우지원, 전희철을 앞세운 경복과 김병철, 양경민의 용산이 대회 우승을 나눠가졌다. 한 동안 잠잠하던 두 학교는 최근 몇 년 동안 고교 랭킹 1·2위를 다투며 맞수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다.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 용산은 조직력과 강한 체력, 경복은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한다. 경복고의 김대환(32)코치는 “용산과 만나면 이겨야 되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고 학교, 동문회에서도 높은 관심을 가진다”며 “올해 용산의 전력이 강해져 박빙의 승부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동문들도 관심 높아 부담” “결승전에 온 것 같아.” 관중석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지난 5일 저녁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제41회 대통령기 전국남녀고교농구대회 경복고-용산고의 경기는 예선전이었지만 결승전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경기장은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과 학부모들의 응원소리로 가득찼다. 2쿼터까지 엎치락 뒤치락 하던 경기는 결국 90-64, 용산의 압승으로 끝났다. 지난 4월 서울시장기대회에서 68-83으로 경복에 진 것을 설욕하는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기고 승리가 확실해지자 용산 벤치는 들뜬 표정으로 모두 일어섰고, 경복 벤치는 힘없이 자리를 지켰다. 두 학교의 맞수의식은 과거 사립 ‘명문고’가 존재하던 시절 ‘공부 라이벌’에서 시작됐다. 연세대-고려대처럼, 두 학교의 라이벌 의식은 자연스레 농구로 옮겨져 40여년을 이어왔다. 양교의 본격 대결은 70년대부터 시작됐다. 60년대 경복고와 휘문고, 배재고가 지배하던 고교 농구계에서 1970년 이보선(58·현 한국농구연맹 경기감독관), 박광호(55·현 한국농구연맹 심판위원장), 신선우(53·전 창원 엘지 감독)의 용산이 대통령기대회 정상에 서며 이름을 알렸다. 박광호씨는 “경복과 붙을 때면 당시 응원단들 신경전도 대단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분위기가 선수들 사이에도 자연스레 생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유재학 사건’은 두 학교의 라이벌 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79년 용산중학교를 졸업한 ‘천재가드’ 유재학(46·울산 모비스 감독)은 용산고 진학이라는 ‘당연한’ 길 대신 경복고를 택해 용산고를 온통 들끓게 했다. 당시 용산중 감독이자 이후 용산고 감독을 지낸 양문의(65·현 한국농구연맹 경기분석위원)씨는 “제자를 뺏긴 것은 유재학이 유일하다”며 아쉬워했다. 60년대 경복고 선수로 뛰었던 방열(68·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씨는 “60년대가 경복과 휘문이었다면 70년대 이후 경복과 용산이 한국 고교농구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고 평가했다.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조직력과 정신력이 용산의 강점이었다면, 큰 신장과 화려한 개인기는 경복의 자랑이었다. 양문의 감독의 혹독한 훈련 아래 용산은 ‘농구 대통령’ 허재를 앞세워 80년대 초반 22연승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용산 전성시대’를 열었다. 90년대 초반은 동갑내기 우지원, 전희철을 앞세운 경복과 김병철, 양경민의 용산이 대회 우승을 나눠가졌다. 한 동안 잠잠하던 두 학교는 최근 몇 년 동안 고교 랭킹 1·2위를 다투며 맞수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다.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 용산은 조직력과 강한 체력, 경복은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한다. 경복고의 김대환(32)코치는 “용산과 만나면 이겨야 되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고 학교, 동문회에서도 높은 관심을 가진다”며 “올해 용산의 전력이 강해져 박빙의 승부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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