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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때리는 재미’ vs ‘맞는 재미’

등록 2009-08-09 21:15

복싱에 빠진 사람들
바람을 가르는 날쌘 주먹은 없다. 나비처럼 날아보려다 링에서 미끄러지기 일쑤다. 하지만 링 위에서만은 상대를 꺾고 말겠다는 ‘복서’의 다부진 눈빛들이다. “그렇지, 파이팅.”, “들어가, 가드 내리고.” 링 밖에서는 체육관 식구들과 가족, 친구들이 쉴 새 없이 목소리를 높인다.

7일부터 9일까지 사흘 동안 강원도 동해시 망상해수욕장 백사장 특설링에서는 생활 복싱인들의 축제인 제10회 전국대학복싱동아리 선수권대회 및 제5회 전국생활체육복싱토너먼트가 열렸다.

흔히들 “링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9일 대회장에서 복싱에 빠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인생의 축소판’을 들여다 본다.

■ 때리는 재미 10~20대의 경기는 힘이 넘친다. 쉴 새 없이 주먹이 교차한다. 하지만 힘이 넘치다 보니 허공에 날리는 주먹도 많고, 자주 미끄러진다. 승부는 케이오(KO)승이나 아르에스씨(RSC·Referee stop contest· 심판이 선수의 상태를 보고 시합을 중지시키는 것)승으로 주로 결정된다.

젊은 선수들은 복싱의 매력은 ‘때리는 재미’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 양주에서 온 김정호(17·고2)군은 “스파링할 때, 주먹이 상대에 적중하면 짜릿하다” 고 말했다. 강원대 ‘크로스카운터’ 동아리의 경주현(20·경영학2)씨는 “아픈 것보다 주먹이 강해지는 것을 보며 성취감을 느낀다”며 “복싱에서 스트레스를 다 털어버린다”고 밝게 웃었다. 서울대 FOS(Fist of SNU)의 한철환(19·전기컴퓨터1)씨도 “펀치가 제대로 들어갔을 때 최고”라고 말했다.

맞는 재미 30대 이상의 중장년층 복싱인들의 경기는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쉽사리 주먹을 내밀지 않는다. 상대 주변을 돌며 ‘결정적 한방’을 날리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승부는 한방으로 결정되는 케이오승보다 3라운드 내내 주고받은 주먹으로 평가받는 판정승 경기가 많다.

그들은 ‘때리는 재미’보다 ‘맞는 재미’에 대해 먼저 입을 연다. 안양에서 건축일을 하는 양홍택(34)씨는 “3년 전부터 복싱을 했는데 고된 건축일로 받는 스트레스를 푼다”며 “맞아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60㎏이하급에 출전한 양씨는 “매일 저녁 1~2시간씩 연습했다“며 “우승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직업군인인 이상범(39)씨는 “맞는 것과 때리는 것이 별 차이가 없다”며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물론 대부분의 중장년층 복서들은 “한방 맞을 때 타격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며 “우선은 안 맞는 게 좋다”고 한마디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주고 받는 재미 50살 이상의 ‘달인’들은 ‘주고 받는 복싱’을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 본다. 이번 대회 심판으로 참여한 속초소방서의 박성일(58)씨는 “링 위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보며 인간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씨는 20대에 잠시 선수 생활을 하다 45살에 복싱을 재개했다. 지난해 9월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제10회 세계소방관복싱대회에서 20대 소방관들을 상대로 은메달을 딴 실력자다. 소방관 생활 중 10여 년을 구조대로 동해안 사고 현장 곳곳을 누빈 박씨는 “구조와 복싱은 극한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에서 비슷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복싱경력 6개월의 배말룡(56)씨는 “나이 든다고 뒷방 늙은이 취급받기는 싫다”며 “복싱을 하며 젊은이들에게 ‘기’를 받다보니 용기가 생기고, 일할 때도 활력을 찾는다”고 말했다. “운동이든 일이든 억지로 하는 것보다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전등 납품업을 하는 전병철(51)씨는 3년 전 대회에서 예선 탈락한 인연으로 올해 망상해수욕장을 다시 찾았다. 전씨는 “5년 전 복싱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스파링 10초만에 코피가 터지고 실려나갔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복싱은 맞을 줄 알아야 하는 스포츠”라며 “아무리 잘 때려도 매를 못 맞으면 안된다”고 웃었다. “인생에서 승승장구가 없는 것처럼 상대에게 펀치를 맞으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는 게 그의 ‘복싱철학’이다.

■ 사흘 동안의 축제 대회는 10년 전 각 대학 복싱동아리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대학생활체육복싱협회와 전국대학복싱동아리연맹이 뒤를 받쳤다. 일반 복싱 마니아들의 실력을 겨룰 자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였다. 대한생활체육복싱협회 김용호 사무총장은 “일반 복싱인들이 프로 대회에 출전해 실력 차만 느끼고 복싱에 흥미를 잃는 것이 안타까워 대회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총장은 “대회 출신 중 주니어 국가대표도 나왔다” 며 “생활 복싱 마니아들의 축제인 동시에 복싱 선수의 꿈도 키울 수 있는 대회”라고 덧붙였다. 김홍수 동해시복싱연맹회장은 “복싱과 젊은이들의 열정은 잘 맞는다”며 “대회가 자리를 잡고 활성화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회는 3년 전 동해시복싱연맹의 도움으로 망상해수욕장에서 열리며 자리를 잡고 있다. 여름 휴가와 대회 출전을 겸해 가족 단위 참여가 늘어나 올해는 380여명이 출전했다. 대회장에는 “아빠 파이팅!”, “우리 딸 잘해” 등 가족들의 응원이 계속됐다. 바다로 놀러나온 피서객들도 ‘해변의 복싱’에 발길을 멈췄다.

이날 망상해수욕장 백사장은 하루 종일 링 위의 뜨거운 숨결과 관객들의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동해/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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