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가 15일(한국시각) 열린 2009~2010 그랑프리 5차 대회 스케이트 아메리카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본드 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레이크플래시드/연합뉴스
쇼트프로그램 76.28…7개월만에 또 세계신
“음악 흐르자 마음 편해져…기억 잘 안난다”
“음악 흐르자 마음 편해져…기억 잘 안난다”
김연아(19·고려대)가 몸짓을 시작하자 ‘1980 링크’는 앞선 11명이 연기하던 것과는 다른 공간으로 변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화려한 연기로 은반을 마음껏 수놓은 ‘피겨 여왕’의 기세에 주변은 압도당했다.
15일(한국시각) 미국 뉴욕의 레이크 플래시드 1980 링크에서 치러진 2009~20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숨막힐듯한 연기를 편 김연아는 기술점수(44.00점)와 예술점수(32.28점)를 합친 76.28점 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미국의 레이철 플랫(합계 58.80점)과는 17.48점 차이. 지난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웠던 최고점(76.12점)을 7개월 만에 갈아치웠다.
■ 실전의 여왕 김연아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지난 1차 그랑프리에서 타이밍을 놓쳐 뛰지 못한 트리플 플립 점프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13일부터 경기 직전 리허설까지 점프 타이밍을 놓치거나 회전수를 채우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을 보여 주변을 걱정시켰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강심장 김연아는 정확한 안쪽 에지(스케이트 날)로 가볍게 뛰어올라 세바퀴를 돌고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심판들은 기본점 5.5점에 1.8점의 가산점을 보태 7.3점으로 화답했다. 김연아는 경기 뒤 “플립 뛰고 나서 아무 생각 없었다”며 긴장했던 속내를 비쳤다.
■ 가산점의 여왕 김연아의 가산점(GOE) 총점은 9.60점으로 시니어 무대 데뷔 뒤 역대 최고다. 완벽한 점프가 ‘가산점 세례’의 바탕이 됐다. 첫번째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10점)를 뛴 김연아는 지금까지 2점만 받아왔던 가산점을 2.2점으로 경신했다. 걱정했던 트리플 플립에서 1.8점을 챙긴 그에게 마지막 더블악셀(기본점 3.5점)의 1.6점의 가산점은 화룡점정이었다. 김연아가 “스피드가 떨어진 것 같다”며 인정한 마지막 스핀 콤비네이션이 지난 대회(레벨 4)와 달리 레벨 3을 받았지만 완벽한 점프와 가산점으로 신기록을 세웠다.
■ 몰입의 여왕 무대 밖에선 수줍은 스무살 김연아는 은반 위에만 서면 자신을 잊고 연기에 몰두했다. 그는 경기 뒤 “음악이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어떻게 점프를 뛰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웃었다. 김연아는 또 “점수에 대한 압박은 느끼고 싶지 않다”며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도 보였다. 오서 코치는 “음악이 시작되면 김연아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 연기에 몰입한다”고 평가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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