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1997년 2월1일 서울 올림픽 제2체육관에서 에스비에스(SBS) 스타즈와 대우 제우스의 역사적인 프로농구 개막전이 열렸다. 당시 에스비에스에서 뛰던 이상범 안양 케이티앤지(KT&G) 감독은 벼락같은 3점슛으로 프로농구 역사상 첫 득점의 주인공이 됐다. 이 감독은 케이티앤지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92년 실업팀 에스비에스에 입단해 지도자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줄곧 한 팀에만 있었다. 에스비에스는 2005년 케이티앤지에 인수됐지만 그는 선수와 코치를 거쳐 감독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팀을 옮긴 적이 없다. 이 감독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김태술, 양희종, 김일두, 신제록 등 무려 4명의 주축 선수를 군에 보냈다. 기존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던 선수는 황진원과 은희석 정도만 남았다. 아무리 2~3년 뒤를 내다본 결정이라고 하지만, 주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실제로 98~99시즌 대구 동양(현 오리온스)이 주축 선수들을 대거 군에 보냈다가 32연패의 수렁에 빠진 적이 있다. 이 감독도 “내 농구인생 최대의 모험”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3년 뒤에 열매는 다른 감독이 따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팀이 우승만 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 그게 내가 팀에 보답하는 방법이다.” 에스비에스는 프로농구 창단을 주도한 팀인데도 케이티앤지로 바뀐 지금까지 한 번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 ‘프랜차이즈 감독’은 눈앞의 성적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케이티앤지는 현재 4승11패로 10개 팀 중 9위다. 최근에는 부상당해 뛰지도 못하는 황진원을 엔트리에 넣을 정도로 선수층이 엷다. 부산 케이티(KT)에서 뛰던 박상률을 “(전)창진이 형의 배려로” 영입하기도 했다. 포인트 가드가 없어 슈터 은희석의 포지션을 바꿨다. 그런데도 지난 21일 우승 후보 전주 케이씨씨(KCC)를 물리치는 등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은희석은 경기당 8.21개의 도움주기로, 김승현, 주희정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제치고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황진원은 부상 투혼을 보이고 있고, 김종학도 취약 포지션인 파워 포워드에서 분전하고 있다. 은희석을 뺀 모든 선수가 다른 팀에서 온 외인군단이다.
이 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선수들과 격의 없이 쌓은 신뢰가 두텁다. 선수들이 잘할 때는 물론이고 실수를 해도 미소를 머금으며 박수로 격려한다. 믿음으로 똘똘 뭉친 프랜차이즈 감독과 외인군단 선수들의 패기가 무섭다. 김동훈 기자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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