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수 삼성생명 탁구단 총감독
[36.5℃ 데이트] 강문수 삼성생명 탁구단 총감독
“감독님, 저 서울 면목동으로 이사 가겠습니다. 오늘 져서 면목이 없으니까요 ….”
탁구스타 유승민이 자신의 패배로 팀의 남자단체전 5연패 꿈이 산산조각난 것이 미안했던지, 대뜸 감독에게 소주잔을 들고 다가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던진다. “면목동은 무슨, 망우리 공동묘지로 가야지 ….” 옆에 있던 최영일 여자감독이 거든다.
그러자 감독은 “선수는 항상 준비돼 있어야 이길 수 있는 거야. 오늘 네가 못하기도 했지만, 네 상대인 케이티앤지(KT&G) (김)민석이가 너무 잘한 거야”라며 못내 아쉬워한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만 30년 동안 탁구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되는 뜻깊은 날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마무리를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오늘 졌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새로워졌어.”
그는 마음을 다잡고 “오상은·유승민 대를 이을 유망주를 빨리 키워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지난 23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3회 종합탁구선수권대회 뒤, 감독은 남녀선수단과 소주 몇 잔 돌리면서 그렇게 회포를 풀고 있었다.
■ 72 그는 강문수(57) 삼성생명 총감독이다. 137개 대회 출전, 72차례 우승. 1980년 1월 초 28살의 젊은 나이에 제일합섬(삼성생명 전신) 남자탁구단 코치로 시작해 올해 말까지 30년씩이나 팀을 떠나지 않고 줄곧 지도자 생활을 했던 그가 국내대회 남자단체전에서 올린 업적이다. 국내 남자탁구판(5개 팀)이 아무리 크지 않다고는 하나, 한 지도자가 100개도 훨씬 넘는 대회에 출전해 반타작 이상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서 7연패를 이룬 적도 있다.
“감독님 그것밖에 안 했어요? 한 3분의 2는 한 줄 알았는데 ….” 옆에서 최영일 감독이 의아해하자, 그는 “내가 다 우승하면 탁구판이 정상이냐”고 반문한다. “감독님 불도저예요. 한번 한다고 하면 누구도 못 말립니다. 탁구에 대한 열정도 대단합니다.” 최 감독의 귀띔이다. 강 감독에게는 ‘휘발유’라는 별명도 붙어다닌다. 워낙 성격이 불 같아서 선수들 훈련 등이 마음에 안 들면 금방 폭발한다는 뜻에서란다.
■ 1986 예전에는 국가대표 지도자로서 1986년 처음 ‘만리장성’ 중국을 넘어 남자탁구를 세계 정상권으로 끌어올린 명장이다. 유남규, 김기택, 안재형, 김택수, 유승민 등도 그의 지도 아래 국가대표팀에서 세계적 스타로 조련됐고,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 등에서 금메달을 거푸 따냈다. 유남규는 86 서울아시안게임 남자단식 우승을 차지했고, 여세를 몰아 88 서울올림픽에서도 이 종목 금메달을 따냈다.
“그때가 지도자로서 내 1차 전성기였지. 32년 만에 남자탁구가 일본 이기고 중국도 누르고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으니 …. 그 전까지는 남자탁구가 이에리사·정현숙의 맹활약으로 잘나가던 여자대표팀 트레이닝 파트너 노릇밖에 못 한 상황이었는데 …. 86년 내가 대표팀 맡고 확 바꿔놓았지. 88 서울올림픽에서 유남규와 김기택이 남자단식 금·은을 휩쓸면서 중국도 그때부터 우리 탁구를 인정하기 시작했어.” 그가 2004년 2월까지 국가대표팀을 맡으며 조련해낸 금메달은 아시아경기대회 4개, 올림픽 1개 등이다. 은·동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화려한 지도자 경력 때문에 1988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탔다. 2004 아테네올림픽 때 ‘애제자’ 유승민이 중국의 왕하오를 제치고 남자단식 금메달을 딴 뒤에는 2005년 탁구인으로는 처음으로 체육훈장 청룡장도 받는 영예도 누렸다. 그리고 삼성그룹에서 상무로 승진까지 했다. 유승민 올림픽 금 쾌거도 그가 기획한 작품이란다. “승민이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 이철승과 함께 금메달을 따 군 면제를 받았어. 그래서 2004 올림픽에 대비해 세계랭킹 4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각종 오픈대회에 무조건 출전시켰지. 그래서 뜻대로 됐고, 난적인 중국 선수와 두번 맞붙는 것을 피해 금메달까지 획득할 수 있었던 거라고. 물론 김택수 대표팀 감독이 막판 3개월간 잘 지도한 것도 크고….” ■ 10 이제 60을 앞둔 그이지만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다. “앞으로 10년은 더 했으면 하는데 …. 감독은 나이를 떠나 60대도 30대와 대결을 할 수 있다고 봐. 힘과 능력이 부족하면 빨리 떠나야 하는 거고, 이기면 70대까지도 계속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는 “무관은 힘이 없으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은데 마음은 지고 있어. 용기가 자꾸 죽어가고 있어. 그러나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 매일 점심때 1시간씩 산을 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용인/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런 화려한 지도자 경력 때문에 1988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탔다. 2004 아테네올림픽 때 ‘애제자’ 유승민이 중국의 왕하오를 제치고 남자단식 금메달을 딴 뒤에는 2005년 탁구인으로는 처음으로 체육훈장 청룡장도 받는 영예도 누렸다. 그리고 삼성그룹에서 상무로 승진까지 했다. 유승민 올림픽 금 쾌거도 그가 기획한 작품이란다. “승민이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 이철승과 함께 금메달을 따 군 면제를 받았어. 그래서 2004 올림픽에 대비해 세계랭킹 4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각종 오픈대회에 무조건 출전시켰지. 그래서 뜻대로 됐고, 난적인 중국 선수와 두번 맞붙는 것을 피해 금메달까지 획득할 수 있었던 거라고. 물론 김택수 대표팀 감독이 막판 3개월간 잘 지도한 것도 크고….” ■ 10 이제 60을 앞둔 그이지만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다. “앞으로 10년은 더 했으면 하는데 …. 감독은 나이를 떠나 60대도 30대와 대결을 할 수 있다고 봐. 힘과 능력이 부족하면 빨리 떠나야 하는 거고, 이기면 70대까지도 계속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는 “무관은 힘이 없으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은데 마음은 지고 있어. 용기가 자꾸 죽어가고 있어. 그러나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 매일 점심때 1시간씩 산을 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용인/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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