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덩크왕’ 김경언이다
/ 그는 당돌했다. “공동우승이라 기분 나쁘다”고 했다. “진정한 덩크왕은 나”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 덩크왕은 둘이었다. 그중 한명이 농구팬에게도 생소한 김경언(21·서울 SK)이다. 김경언은 185㎝의 ‘작은’ 키로 공중에서 공을 쥔 팔을 한 바퀴 크게 돌려 내리찍는 ‘윈드밀 덩크’부터 자유투구역 부근에서 뛰어올라 내리찍는 ‘조든 덩크’까지 갖가지 묘기를 선보였다. 자신보다 키가 19㎝나 큰 혼혈 선수 이승준(32·서울 삼성)을 1라운드에서 48-44로 제쳤다. 하지만 2·3라운드에선 똑같이 50점 만점을 받았고, 아쉽게 공동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김경언은 미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녔다. 그 시절엔 축구에 ‘꽂혔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동네 아이들은 농구를 즐겼다. 그도 언제부턴가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국가대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던 할아버지를 닮았는지 운동은 뭐든 잘한다”고 했다. 대학 1학년이던 지난해 6월, “동양인의 한계를 느껴” 한국 프로농구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2군 선수로, 그것도 맨 마지막 순번(2라운드 10번)으로 간신히 뽑혔다. 그래도 일반인 참가자 가운데 유일하게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유일한 피붙이인 아버지와 떨어져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 2군 숙소는 아파트였다. 연봉 2000만원으로 관리비와 생활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미국식 사고방식에 젖은 그가 한국식 위계질서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1군 무대에서 뛸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12월10일 1군에서 그를 불렀고, 일주일 뒤 창원 엘지(LG)와의 경기 때 코트에 투입됐다. 그는 “감독님이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머리가 백지상태였다”고 했다. 2분9초 동안 그가 보여준 것은 튄공잡기 1개와 파울 1개가 전부였다.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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