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선수. 사진 김동훈 기자
왼쪽 사이드에서 슛을 던지기 위해 솟아올랐다. 골키퍼가 막아서자 각이 없다. 하지만 공은 골키퍼 키를 훌쩍 넘었다가 뚝 떨어지며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치 투수가 던진 포크볼같다. 골키퍼와 정면으로 맞선 7m 던지기. 큰 덩치의 골키퍼가 몇 발 앞으로 나와 막아서자 틈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공은 골문 밖으로 벗어날 듯 하다가 바닥에 한번 튕긴 뒤 방향으로 틀어 골문 안으로 쏙 들어갔다. 마치 야구의 커브같다. 제1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중인 한국대표팀 왼쪽 날개 이태영(33·웰컴크레디트 코로사)이 갖가지 묘기를 선보이며 맹활약중이다. 그는 득점 기회가 많지 않은 레프트윙을 맡으면서도 이번 대회 5경기에서 19골이나 터뜨렸다. 한국팀 최다 골을 기록중인 주공격수 박중규와 정수영(이상 20골)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이태영의 기량은 속공과 스카이슛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형 핸드볼의 집약체다. 그는 키 1m74로 팀내에서도 가장 작다. 부산 동아중학교 1학년 때 “운동이 하고 싶어” 핸드볼부에 찾아갔다가 키가 작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100m를 12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뛰어난 감각으로 국내 핸드볼큰잔치 통산득점 역대 10위(327골)에 오를만큼 검증된 선수다. 2003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중인 그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경기대회 등 주요 국제대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고 어느덧 한국 대표팀 가운데 윤경신(37), 강일구(34)에 이은 팀내 세 번째 고참이 됐다. 이태영은 후배 사랑이 남다르다. 편파판정에 희생된 2006년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 대해선 “반드시 금메달을 따 후배들이 병역혜택을 받길 원했는데 너무 원통하다”고 했다. 포부를 묻자 “핸드볼이 하루빨리 프로화 해서 후배들이 보다 좋은 여건에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란 이스파한 팀으로 이적해 국외진출의 꿈도 이뤘지만 “정이 없고 폐쇄적인 환경이 싫어” 한달 여만에 국내에 복귀하기도 했다. 이태영은 “편파판정만 없다면 아시아 정상은 한국이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한국 핸드볼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작지만 매운 한국 고추처럼 그의 활약에 거는 기대가 크다. 글·사진 베이루트/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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