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우리은행은 1958년 국내 최초로 여자농구단을 만든 우리나라 여자농구의 효시다. 1970년대 여자농구 전성기와 1980~90년대 농구대잔치, 2000년대 프로 리그를 거치는 동안 숱한 팀들이 명멸했지만, 우리은행은 성적이 좋건 나쁘건 한결같이 여자농구단을 지켜왔다.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김계령, 홍현희 등 팀의 간판이던 30대 노장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보내고,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영입한 것이다. 눈앞의 성적보다는 미래를 위한 과감한 결단이었다.
최근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대부분의 팀이 2명씩 선발했지만 우리은행은 4명이나 뽑았다. 드래프트 전날 이종휘 구단주가 “여자농구 발전을 위해 4명을 선발하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3순위(전체 13순위)로는 다른 팀들이 외면한 역대 최단신 선수를 뽑았고, 마지막 4순위(전체 15순위)는 춘천 연고지 선수를 선발해 관계자들한테서 박수를 받았다. 우리은행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언론도 이를 칭찬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3년 계약이 끝나는 정태균 감독은 당장 성적이 좋아야 재계약도 유리하다. 하지만 미래를 기약하자는 구단의 방침에 따랐다. 시즌이 시작되고 우리은행은 예상대로 1승7패로 최하위에 처졌다. 하지만 정 감독은 오랜 여자농구 지도자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 선수들을 잘 다독이며 잠재력이 풍부한 그들의 기량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성적은 최하위지만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며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7일에는 개막 뒤 전승을 달리고 있는 선두 용인 삼성생명을 상대로 접전을 펼쳤다. 득점 랭킹 1·2위 킴벌리 로버슨과 이종애가 버티고 있는 팀이지만 배혜윤, 박혜진, 고아라 등 아직은 무명 선수들이 대등한 경기를 이끌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은행이 느닷없이 정 감독을 경질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성적 부진이 그 이유다. 이게 사실이라면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우리은행의 말은 거짓이 되는 셈이다. 지금 우리은행 전력으로는 미국프로농구(NBA) 최고의 명장 필 잭슨 감독을 앉혀놓아도 최하위를 면할 수 없다. 물론 우리은행 구단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구단에서 후임 감독을 물색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모처럼 칭찬을 받고 있는 우리은행이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소리를 듣지 않길 바란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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