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럭비의 매력이 뭔줄 아세요?”
한면이라도 뚫리면 끝장이에요” 옷맵시부터 심상치 않다. 럭비선수들이 입는 검정색 재킷과 트레이닝복, 그리고 운동화. 자그마한 몸집에 생글생글 웃는 얼굴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권민정(25). 어린시절 그의 별명은 ‘럭비공’이었다. 통통 튀는 성격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럭비와의 인연은 이때 잉태됐는지 모른다. 2001년 대학(고려대)에 입학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럭비를 처음 봤다. 미식축구인줄 알았다. 미식축구는 <리벰버 타이탄>이나 <그들만의 계절>같은 영화에서 봤다. 하지만 경기는 몰랐다.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만 기억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감동이 ‘럭비’로 다가올 줄이야…. 설명하려면 좀 길다. 연세대와의 정기전을 앞두고 응원부 ‘기수’로 선발됐다. 선수 입장 때 깃발을 들고 뛰는 일이다. 새내기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훈련은 뜻밖에 혹독했다. 선수들과 함께 뛰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을 길러야 한단다. 운동장 트랙을 달렸다. 선착순 달리기. 순서를 끊어서 늦게 들어오면 또 운동장을 돌았다. 군대에서 흔히 말하는 ‘뺑뺑이’였다. 구토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너무 힘들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때 어디선가 격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럭비선수들이었다. ‘자기들은 더 힘들게 훈련하면서 우리를 위해 박수를 쳐주다니….’ 진한 감동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려서 별명은 럭비공
대학 럭비부 취재하며
운명같은 인연 맺었다
럭비에 빠져 자비 원정취재
“아들 낳아 럭비선수 키울터” 스포츠는 원래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프로야구 엘지트윈스 팬이었다. 열 살 때 올림픽 축구예선에서 일본을 꺾은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은 남들의 눈길이 덜 가는 곳을 좇는다. ‘헝그리 정신’이 좋다. 럭비와의 인연은 또 찾아왔다. 학교 신문사에 들어갔다. 우연히 럭비부를 취재했다. 정대관 감독과 만났다. 정 감독은 “비인기종목에 관심을 가져 줘 고맙다”며 “럭비경기를 보러오라”고 했다. 럭비에 빠지기 시작했다. 경기를 볼 때면 가슴이 뛰었다.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럭비의 매력이 뭔 줄 아세요? 한명이라도 뚫리면 끝 장이예요. ‘올 포 원, 원 포 올(All for one, One for all)’ 즉,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펼치는 경기지요. 경기가 끝나면 ‘노사이드 정신’으로 돌아갑니다. 내 편, 네 편이 없죠.” 지난해 5월에는 자비를 들여 일본까지 갔다. 고려대와 와세다대의 럭비 친선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겨울에는 돈을 모았다. 7인제 럭비월드컵이 열리는 홍콩에 가기 위해서였다. 커피전문점, 과외, 소설 번안 작업 등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180만원을 모았다. 지난 3월 럭비 대표선수들과 함께 홍콩으로 날아갔다. 선수단은 그를 ‘꼬맹이’라고 부르며 챙겨줬다. 그는 조직위를 설득해 프레스카드까지 발급받았다. “한국에서 온 학생기자인데, 내가 아니면 한국에 럭비월드컵을 소개할 수 없다”며 2시간을 매달린 결과다. 럭비 월드컵은 그에게 많은 추억을 선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선수들과는 요즘도 안부를 주고받는다. ‘혹시 럭비선수 남자친구가 없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했다. “오해받기 싫어서 의식적으로 피하죠. 앞으로도 럭비선수와는 사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럭비선수로 키우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한면이라도 뚫리면 끝장이에요” 옷맵시부터 심상치 않다. 럭비선수들이 입는 검정색 재킷과 트레이닝복, 그리고 운동화. 자그마한 몸집에 생글생글 웃는 얼굴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권민정(25). 어린시절 그의 별명은 ‘럭비공’이었다. 통통 튀는 성격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럭비와의 인연은 이때 잉태됐는지 모른다. 2001년 대학(고려대)에 입학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럭비를 처음 봤다. 미식축구인줄 알았다. 미식축구는 <리벰버 타이탄>이나 <그들만의 계절>같은 영화에서 봤다. 하지만 경기는 몰랐다.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만 기억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감동이 ‘럭비’로 다가올 줄이야…. 설명하려면 좀 길다. 연세대와의 정기전을 앞두고 응원부 ‘기수’로 선발됐다. 선수 입장 때 깃발을 들고 뛰는 일이다. 새내기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훈련은 뜻밖에 혹독했다. 선수들과 함께 뛰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을 길러야 한단다. 운동장 트랙을 달렸다. 선착순 달리기. 순서를 끊어서 늦게 들어오면 또 운동장을 돌았다. 군대에서 흔히 말하는 ‘뺑뺑이’였다. 구토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너무 힘들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때 어디선가 격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럭비선수들이었다. ‘자기들은 더 힘들게 훈련하면서 우리를 위해 박수를 쳐주다니….’ 진한 감동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려서 별명은 럭비공
대학 럭비부 취재하며
운명같은 인연 맺었다
럭비에 빠져 자비 원정취재
“아들 낳아 럭비선수 키울터” 스포츠는 원래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프로야구 엘지트윈스 팬이었다. 열 살 때 올림픽 축구예선에서 일본을 꺾은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은 남들의 눈길이 덜 가는 곳을 좇는다. ‘헝그리 정신’이 좋다. 럭비와의 인연은 또 찾아왔다. 학교 신문사에 들어갔다. 우연히 럭비부를 취재했다. 정대관 감독과 만났다. 정 감독은 “비인기종목에 관심을 가져 줘 고맙다”며 “럭비경기를 보러오라”고 했다. 럭비에 빠지기 시작했다. 경기를 볼 때면 가슴이 뛰었다.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럭비의 매력이 뭔 줄 아세요? 한명이라도 뚫리면 끝 장이예요. ‘올 포 원, 원 포 올(All for one, One for all)’ 즉,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펼치는 경기지요. 경기가 끝나면 ‘노사이드 정신’으로 돌아갑니다. 내 편, 네 편이 없죠.” 지난해 5월에는 자비를 들여 일본까지 갔다. 고려대와 와세다대의 럭비 친선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겨울에는 돈을 모았다. 7인제 럭비월드컵이 열리는 홍콩에 가기 위해서였다. 커피전문점, 과외, 소설 번안 작업 등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180만원을 모았다. 지난 3월 럭비 대표선수들과 함께 홍콩으로 날아갔다. 선수단은 그를 ‘꼬맹이’라고 부르며 챙겨줬다. 그는 조직위를 설득해 프레스카드까지 발급받았다. “한국에서 온 학생기자인데, 내가 아니면 한국에 럭비월드컵을 소개할 수 없다”며 2시간을 매달린 결과다. 럭비 월드컵은 그에게 많은 추억을 선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선수들과는 요즘도 안부를 주고받는다. ‘혹시 럭비선수 남자친구가 없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했다. “오해받기 싫어서 의식적으로 피하죠. 앞으로도 럭비선수와는 사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럭비선수로 키우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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