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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공 품고 질주하는 우릴 보면 반할걸요”

등록 2012-05-24 19:26수정 2012-05-24 22:34

럭비 국가대표팀 권정혁, 연권우, 유영남, 박완용(왼쪽부터)이 23일 인천 송도 엘엔지(LNG)스포츠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고 있다.
인천/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럭비 국가대표팀 권정혁, 연권우, 유영남, 박완용(왼쪽부터)이 23일 인천 송도 엘엔지(LNG)스포츠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고 있다. 인천/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별별 스타] HSBC 대회 구슬땀 럭비국가대표 4인방
비인기종목 현실에도 자부심
“실업팀 적어 상무가 종착역”
억대 연봉 주는 일본으로 진출
내일 UAE와 마지막 경기

“제발, 저희 불쌍하다고 쓰지 말아요.”

23일 저녁 7시께 인천 송도 엘엔지(LNG)스포츠센터에서 만난 한국 15인제 럭비 국가대표팀 4인방(연권우 박완용 유영남 권정혁)은 정색하고 부탁한다. 야구·축구 등 인기 종목에 견줘 세간의 관심이 적고 협회의 지원도 열악해 럭비선수를 ‘불우이웃’ 취급하는 게 내심 불편했던 모양이다. 서천오 국가대표 감독은 “자부심을 갖고 운동하는 선수들을 자랑스럽게 봐달라”고 당부했다.

자존심은 럭비의 원시적 순수성에서 나온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반석처럼 탄탄한 가슴. 불도저처럼 스크럼을 지키고, 숨막힐 정도로 달린 뒤 또 달리는 원초적 생동감. 거친 숨소리와 열기에 황혼마저 흐릿하다.

일본파 유영남(29·파나소닉), 권정혁(24·사닉스), 연권우(28·요코가와)와 국내파 박완용(28·켑코)은 대표팀의 중핵. 각각 태클을 담당하는 플랭커, 중앙 수비수인 센터, 공격진용의 로크, 볼 연결을 하는 스크럼하프를 맡고 있다. 이들은 26일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에이치에스비시(HSBC) 아시아 5개국(톱팀) 대회 마지막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경기를 위해 굵은 땀을 쏟는다. 가장 권위있고 규모가 큰 이 대회에서 이기면 준우승. 선수들의 외로운 질주엔 힘이 넘친다.

“럭비공을 가슴에 품고 질주하는 우리를 현장에서 보게 되면 반할걸요.”(박완용) “일본처럼 얼굴도 잘생기고 쇼맨십도 좋고 실력도 좋은 선수를 스타로 만들어 럭비 저변을 넓히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요.”(유영남) “우리 중엔 영남 선배?”(연권우) 모처럼 취재진을 만난 사나이들은 장난기를 발동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럭비를 시작한 이들은 부상병동이다. 격렬한 부닥침으로 어깨·턱·관절 등은 모두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맞서야 한다. “트라이(상대의 골 안에 공을 넣는 것) 할 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어 럭비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따져보면 럭비 국가대표팀이 푸대접받을 ‘레벨’은 아니다. 세계 20위권에,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함께 상위권이다. 권정혁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본 고교팀 감독의 눈에 띄어 일찌감치 유학한 ‘숨은 진주’였다. 유영남은 “대회 참가로 외국에 가면 환영받는다. 길 가다가도 힐끔힐끔 쳐다보는 팬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서천오 감독도 “일본에 진출한 선수들도 억대 연봉을 받으며 활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작 국내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가대표 38명에 담당 트레이너가 1명이다. 물리치료사도 없다. 책정된 밥값은 한 끼 8000원. 축구 등 인기 스포츠 국가대표팀은 1만원이 훌쩍 넘는다. 평균 몸무게 90㎏인 ‘거구’들의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경산, 강진 등 4곳에 흩어져 있는 전용구장도 이동이 만만찮다. 유영남은 “연습장과 숙소가 멀어 마음껏 연습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주목받은 시절이 있었지만 10년 동안 달라진 게 없어요.”(연권우)

그래도 럭비에 푹 빠졌다. 4인방은 “이 재미있는 럭비를 모르는 이들이 손해”라고 말한다. “럭비는 마약 같은 운동”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고 자신한다. “축구는 골이 1점인데 우린 트라이에 컨버전킥(보너스킥)까지 하면 7점도 나오니 큰 점수로 지고 있어도 역전이 가능해 끝까지 긴장하며 보게 되죠.”(박완용) “신사 스포츠예요. 시합할 때는 ‘너 죽자 나 죽자’ 달려드는데 끝나면 항상 가운데서 끌어안고 악수하고 친구가 되죠.”(연권우)

“우리끼린 ‘상무 종착역’이라고 말해요. 상무를 졸업하면 실업팀이 포스코, 켑코, 삼성중공업, 인천시체육회 4개뿐이라 갈 곳이 없어요. 팀이 적으니 은퇴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깜깜해요. 야구팀을 운영하는 대기업에서 럭비팀을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잠시 도피하려고 했지만 이야기는 또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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