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더러
[토요판] 승부
페더러 VS 나달 VS 조코비치
페더러 VS 나달 VS 조코비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역사상 최장 기간(287주) 남자 테니스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가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업적이 있다. 올림픽 개인 단식 금메달 획득이다. 페더러는 오는 28일 개막하는 런던올림픽에서 자신의 마지막 꿈을 향해 뛴다. 숙적 라파엘 나달은 20일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을 포기했다. 유일한 경쟁자는 이제 노박 조코비치 한 사람이다. 올림픽 남자 단식 결승은 다음달 5일 열린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멜버른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국제도시에서는 해마다 우승 상금 20억원이 걸린 테니스 대회(그랜드슬램)가 열린다. 테니스 대회는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마드리드, 중국 상하이 등에서도 주요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세계 곳곳에서 대회를 여는 테니스는 어찌 보면 축구보다 더 대중적인 스포츠라 할 수 있다. 오랜 역사와 폭넓은 인기를 확보하고 있는 테니스계는 지금 로저 페더러(스위스), 라파엘 나달(스페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세 슈퍼스타가 펼치는 라이벌전으로 유례없는 황금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 남자프로테니스(ATP) 순위로는 페더러가 1위, 조코비치와 나달이 2~3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세 명 가운데 이달 초 2012 윔블던 테니스대회 준결승에서 맞붙었던 페더러와 조코비치는 오는 28일 개막하는 런던올림픽에서도 격돌할 예정이다.
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의 경쟁 구도를 이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철학자 헤겔이 주창한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떠올리는 것이다. 정반합은 하나의 주장인 정(正)에 모순되는 다른 주장인 반(反)이, 좀더 우월하고 종합적인 주장인 합(合)에 통합되는 과정을 이른다. 세계 테니스의 판도를 좌우하고 있는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도 마찬가지다. 태초에 페더러라는 정이 있었다면, 거기에 맞서는 반으로서의 나달이 생겼고, 그 뒤를 이어 합에 해당하는 조코비치가 떠올랐다.
황제 아니면 천재, 천재 아니면 황제
2000년대는 페더러의 시대였다. 그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윔블던 5연패는 물론, 유에스(US)오픈 5연패(2004~2008) 등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그랜드슬램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이루며 남자 테니스의 새로운 황제로 떠올랐다. 17개의 메이저 타이틀 획득과 통산 75차례의 우승은 황제가 남긴 유산이었다. 스포츠계에서 ‘황제’의 칭호를 얻은 선수는 골프의 타이거 우즈와 농구의 마이클 조던, 축구의 펠레나 디에고 마라도나, 아이스하키의 웨인 그레츠키, 에프원(F1)의 미하엘 슈마허 정도다. 이들과 함께 페더러가 황제의 칭호를 얻은 것은 테니스 사상 그랜드슬램 대회 최다 우승이라는 기록이 크게 작용했다. 600억원에 이르는 연 수입은 그가 황제 자리를 유지하는 데 따른 여러 특권 가운데 하나였다. 참고로 페더러의 수입 명세에는 상금 외에도 윌슨(라켓과 스트링 제조업체)이나 나이키사의 연간 후원금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테니스인은 현역 최고의 남자 선수인 페더러를 가리켜 충성스럽고 정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닌 완벽한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 마치 스위스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는 분석도 있다. 페더러가 과거의 챔피언을 거꾸러뜨리며 세계를 제패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 이른 나이에 세계 1위에 오른 만큼 페더러의 시대는 오래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페더러의 시대는 예상보다 조금 일찍 또다른 선수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라파엘 나달이었다.
나달은 페더러가 그랜드슬램 타이틀 3개를 거머쥔 2004년, 페더러의 유일한 약점인 원핸드 백핸드를 집요하게 공략하며 프랑스오픈 우승컵을 차지했다. 페더러와 나달이 벌이고 있는 오랜 전쟁의 시작이었다.
사실 페더러가 2004년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뒤 내리 5년간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지킬 때, 나달에게는 만년 2위라는 오명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다. 나달이 세계 랭킹에서 페더러를 밀어내고 마침내 1위 자리에 오른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였다.
메이저 17승, 페더러의 독주
나달이 그를 깼고
조코비치가 나달을 깼다
그리고 올해 페더러의 부활 물고 물리는 1위 쟁탈전
코트의 10년은 그들 것이었고
아직까지 절대강자는 없다 페더러가 테니스의 황제라면 나달은 천재로 통했다. 페더러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닌 오른손잡이 선수인 반면, 나달은 야생마처럼 터프하고 자연미가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왼손잡이였다. 극과 극의 이미지를 지닌 두 선수가 2004년부터 7년간 랭킹 1, 2위를 다투며 양강 체제를 굳히는 동안 페더러의 독주를 견제한 유일한 천적이 나달이었다. 이 둘의 전적은 18승10패로 나달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 8번의 그랜드슬램 맞대결에서 나달은 단 두 번(2006년과 2007년 윔블던)만 졌다. 나달은 페더러를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달은 그랜드슬램에서 페더러와 맞붙는 경우 집중력 면에서 그를 압도하며 번번이 우승을 차지했는데, 일촉즉발의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결연함을 유지한 것이 나달의 최대 강점이었다. 강력한 스핀이 걸린 포핸드는 바운드 직후 튀어올라 페더러의 백핸드 쪽으로 파고들었고,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체력과 투지는 ‘포인트 적립’의 밑바탕이었다. 나달이 페더러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감정을 잘 조절하며 긴 랠리를 참아내는 굳은 심지였다. 페더러가 황제로 군림하는 동안에도 나달은 프랑스오픈 4연패 등으로 페더러에 맞서며 ‘클레이코트의 황제’로 떠올랐고, 역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통산 투어대회 우승은 50회.
조코비치와 함께 트로이카 시대 열리다
페더러와 나달, 혹은 나달과 페더러. 테니스계의 대표적 라이벌인 두 선수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된 탓에 2005년 이후부터는 다른 누군가가 주목받을 틈이 없었다. 2005년 프랑스오픈부터 2010년 유에스오픈까지 23개의 그랜드슬램 단식 트로피 중 단 2개를 제외한 21개의 트로피가 페더러와 나달, 두 사람의 몫이었다. 극적이면서도 아름다웠던 두 선수의 경쟁은 테니스 팬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남자 투어의 다른 선수들 처지에서 그 둘 사이의 경쟁은 지독하리만치 숨막히는 경쟁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강철 같았던 두 사람‘만’의 경쟁 구도에 균열을 일으킨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조코비치다. 2011년 윔블던에서 나달은 예전 페더러의 역할이었고 챔피언의 약점을 찾아낸 선수가 조코비치였다. 조코비치는 나달 못지않게 움직임이 좋고, 나달의 파워와 스핀을 흡수할 수 있었으며, 나달의 장기인 크로스코트 포핸드를 자신의 장기인 투핸드 백핸드로 받아칠 수 있었다. 2011년 각종 투어 대회에서 나달과 결승에서 다섯번 만나 다섯번 승리한 조코비치는 이전까지 절대적 존재인 나달에게 새로운 크립토나이트(영화 <슈퍼맨>에서 슈퍼맨의 초능력을 빼앗는다고 알려진 광석)가 되었다. 조코비치는 자신의 등장을 통해 남자 테니스에서 영원히 독보적이거나 완벽한 선수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조코비치는 테니스에서 이기는 법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도 선보였다. 조코비치는 “페더러나 나달과의 경기를 위해 코트에 발을 내디디면 자신감이 샘솟으면서 내가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하며 등장했다. 조코비치는 뛰어난 선수였다. 그에게서 눈여겨볼 것은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전반적으로 고른 능력에 유연성과 균형,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어떤 공이든 받아낼 수 있는 순발력 등 뭐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선수가 조코비치였다. 스키 선수를 여럿 배출한 집안 출신인 조코비치의 플레이는 스키어에게서 볼 수 있는 굉장히 균형 잡힌 자세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등장과 함께 곧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조코비치는 테니스의 전통도, 저변도 거의 없는 나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르비아에서 태어나 자란 소년이었다. 조코비치는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근처의 하드코트에서 테니스를 처음 배웠다. 조코비치는 1968년 오픈 시대(Open Era: 프로선수가 그랜드슬램 등의 주요 대회에 출전하도록 허용된 시기) 이후 4대 그랜드슬램 준결승에 진출한 최연소 선수였다. 그러더니 재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 2008년 호주에서 생애 첫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역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조코비치의 성공 스토리는 오픈 시대의 테니스 역사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하고 믿기 힘든 이야기에 속한다. 그러나 사실 조코비치의 스토리는 앤드리 애거시에서부터 모니카 셀레스, 라파엘 나달에 이르는 다른 테니스 영웅의 그것과 공통점이 많다. 또한 조코비치의 성공 스토리는 그의 부모인 아버지 스르잔과 어머니 디야나의 가족사이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이 테니스 선수로 대성하기를 기대하며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는 평생 저축한 돈을 비우량주에 투자한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페더러를 이긴 나달과 나달을 이긴 조코비치의 세상이 계속 이어진다면 황금시대라는 말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에 다시 새롭게 등장한 페더러가 있었기에 트로이카(삼두마차)의 황금시대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나이 서른 줄에 들어선 페더러는 최근 몇년간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져 갈 뿐’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이 노병은 최근 다시 살아 꿈틀거렸다. 페더러는 이달 초 지상 최고의 테니스 잔치인 윔블던에서 우승함으로써 건재를 만천하에 알렸다. 조코비치의 세계 1위라는 1년간 영화를 일장춘몽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페더러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나달은 단식 ‘금’ 조코비치 ‘동’
페더러는 복식 ‘금’을 따냈다 2012년 런던에선?
나달이 부상으로 출전 포기
두 명의 승패에 따라
1위 굳히기냐 탈환이냐 갈림길 런던올림픽, 1위 굳히기냐 탈환이냐 처음 정(正) 페더러가 반(反) 나달에게, 그리고 합(合) 조코비치로 변화된 세계 남자테니스는 다시 조코비치가 정이 되고 페더러가 반이 되어 좀체 끝날 것 같지 않은 승부로 이어지고 있다. 페더러는 나달이 있기에 더욱 높은 자리에 우뚝 섰고, 나달은 페더러가 있기에 빛을 발했다. 조코비치는 페더러와 나달이 있기에 더욱 귀하고 값진 존재로 여겨졌다. 이들의 치열한 승부는 결국 런던올림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8년간 세계 테니스의 트로이카(삼두마차)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올해 런던올림픽에 나란히 출전했다. 이들의 역대 올림픽 성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페더러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08년 베이징에 이어 올해 런던올림픽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 올림픽만 4번을 치르게 됐다. 최고 성적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복식 금메달. 2004, 2008년 올림픽에 출전한 나달은 2008년 단식 금메달을 따냈다. 반면 조코비치는 지난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에서 나달에게 패한 뒤 3~4위전에서 다른 선수를 이겨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까? 일단 단식 예상 대진표상 1번 시드 페더러(세계 1위)와 2번 시드 조코비치(2위)는 결승 이전에는 맞붙지 않는다. 조코비치는 3번 시드(세계 3위) 라파엘 나달과 준결승전에서 만나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나달-조코비치 준결승전을 다시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세계 랭킹 1~2위 순위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페더러가 금메달을 획득하면 랭킹 점수 750점을 보태 1위를 당분간 굳히게 되고, 조코비치가 우승하면 페더러를 제치고 다시 랭킹 1위가 된다. 변수가 많은 올림픽에서 둘 다 초반 탈락하고 나달이 2연패에 성공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나달이 다른 두 선수와 보이는 랭킹포인트의 차이 탓에 순위에는 변동이 없다. 세번째 올림픽에 출전하는 나달은 “올림픽은 가장 중요한 대회”라며 “스포츠 선수로서 올림픽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은 가장 특별한 일이고 나에게 이 경험은 아주 소중하다”고 말했다.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승부를 예고한 것이다. 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 등 테니스 영웅의 불꽃튀는 경쟁은 기수 자리를 놓고 이미 시작됐다.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세 선수 가운데 조코비치와 나달은 자국 선수단을 대표하는 기수를 맡아 개막식에서 각각 세르비아와 스페인의 국기를 드는 영예를 안았다. 페더러는 이미 두 차례나 기수를 맡아 다른 선수에게 양보를 했다. 테니스의 클래식인 2012 윔블던이 끝난 지 20일 만에 같은 잔디코트에서 올림픽 메달 색깔을 놓고 다시 열리는 세 선수의 승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박원식 테니스피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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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는 페더러의 시대였다. 그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윔블던 5연패는 물론, 유에스(US)오픈 5연패(2004~2008) 등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그랜드슬램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이루며 남자 테니스의 새로운 황제로 떠올랐다. 17개의 메이저 타이틀 획득과 통산 75차례의 우승은 황제가 남긴 유산이었다. 스포츠계에서 ‘황제’의 칭호를 얻은 선수는 골프의 타이거 우즈와 농구의 마이클 조던, 축구의 펠레나 디에고 마라도나, 아이스하키의 웨인 그레츠키, 에프원(F1)의 미하엘 슈마허 정도다. 이들과 함께 페더러가 황제의 칭호를 얻은 것은 테니스 사상 그랜드슬램 대회 최다 우승이라는 기록이 크게 작용했다. 600억원에 이르는 연 수입은 그가 황제 자리를 유지하는 데 따른 여러 특권 가운데 하나였다. 참고로 페더러의 수입 명세에는 상금 외에도 윌슨(라켓과 스트링 제조업체)이나 나이키사의 연간 후원금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테니스인은 현역 최고의 남자 선수인 페더러를 가리켜 충성스럽고 정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닌 완벽한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 마치 스위스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는 분석도 있다. 페더러가 과거의 챔피언을 거꾸러뜨리며 세계를 제패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 이른 나이에 세계 1위에 오른 만큼 페더러의 시대는 오래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페더러의 시대는 예상보다 조금 일찍 또다른 선수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라파엘 나달이었다.
나달
나달이 그를 깼고
조코비치가 나달을 깼다
그리고 올해 페더러의 부활 물고 물리는 1위 쟁탈전
코트의 10년은 그들 것이었고
아직까지 절대강자는 없다 페더러가 테니스의 황제라면 나달은 천재로 통했다. 페더러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닌 오른손잡이 선수인 반면, 나달은 야생마처럼 터프하고 자연미가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왼손잡이였다. 극과 극의 이미지를 지닌 두 선수가 2004년부터 7년간 랭킹 1, 2위를 다투며 양강 체제를 굳히는 동안 페더러의 독주를 견제한 유일한 천적이 나달이었다. 이 둘의 전적은 18승10패로 나달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 8번의 그랜드슬램 맞대결에서 나달은 단 두 번(2006년과 2007년 윔블던)만 졌다. 나달은 페더러를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달은 그랜드슬램에서 페더러와 맞붙는 경우 집중력 면에서 그를 압도하며 번번이 우승을 차지했는데, 일촉즉발의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결연함을 유지한 것이 나달의 최대 강점이었다. 강력한 스핀이 걸린 포핸드는 바운드 직후 튀어올라 페더러의 백핸드 쪽으로 파고들었고,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체력과 투지는 ‘포인트 적립’의 밑바탕이었다. 나달이 페더러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감정을 잘 조절하며 긴 랠리를 참아내는 굳은 심지였다. 페더러가 황제로 군림하는 동안에도 나달은 프랑스오픈 4연패 등으로 페더러에 맞서며 ‘클레이코트의 황제’로 떠올랐고, 역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통산 투어대회 우승은 50회.
조코비치
페더러와 나달, 혹은 나달과 페더러. 테니스계의 대표적 라이벌인 두 선수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된 탓에 2005년 이후부터는 다른 누군가가 주목받을 틈이 없었다. 2005년 프랑스오픈부터 2010년 유에스오픈까지 23개의 그랜드슬램 단식 트로피 중 단 2개를 제외한 21개의 트로피가 페더러와 나달, 두 사람의 몫이었다. 극적이면서도 아름다웠던 두 선수의 경쟁은 테니스 팬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남자 투어의 다른 선수들 처지에서 그 둘 사이의 경쟁은 지독하리만치 숨막히는 경쟁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강철 같았던 두 사람‘만’의 경쟁 구도에 균열을 일으킨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조코비치다. 2011년 윔블던에서 나달은 예전 페더러의 역할이었고 챔피언의 약점을 찾아낸 선수가 조코비치였다. 조코비치는 나달 못지않게 움직임이 좋고, 나달의 파워와 스핀을 흡수할 수 있었으며, 나달의 장기인 크로스코트 포핸드를 자신의 장기인 투핸드 백핸드로 받아칠 수 있었다. 2011년 각종 투어 대회에서 나달과 결승에서 다섯번 만나 다섯번 승리한 조코비치는 이전까지 절대적 존재인 나달에게 새로운 크립토나이트(영화 <슈퍼맨>에서 슈퍼맨의 초능력을 빼앗는다고 알려진 광석)가 되었다. 조코비치는 자신의 등장을 통해 남자 테니스에서 영원히 독보적이거나 완벽한 선수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조코비치는 테니스에서 이기는 법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도 선보였다. 조코비치는 “페더러나 나달과의 경기를 위해 코트에 발을 내디디면 자신감이 샘솟으면서 내가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하며 등장했다. 조코비치는 뛰어난 선수였다. 그에게서 눈여겨볼 것은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전반적으로 고른 능력에 유연성과 균형,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어떤 공이든 받아낼 수 있는 순발력 등 뭐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선수가 조코비치였다. 스키 선수를 여럿 배출한 집안 출신인 조코비치의 플레이는 스키어에게서 볼 수 있는 굉장히 균형 잡힌 자세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등장과 함께 곧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조코비치는 테니스의 전통도, 저변도 거의 없는 나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르비아에서 태어나 자란 소년이었다. 조코비치는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근처의 하드코트에서 테니스를 처음 배웠다. 조코비치는 1968년 오픈 시대(Open Era: 프로선수가 그랜드슬램 등의 주요 대회에 출전하도록 허용된 시기) 이후 4대 그랜드슬램 준결승에 진출한 최연소 선수였다. 그러더니 재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 2008년 호주에서 생애 첫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역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조코비치의 성공 스토리는 오픈 시대의 테니스 역사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하고 믿기 힘든 이야기에 속한다. 그러나 사실 조코비치의 스토리는 앤드리 애거시에서부터 모니카 셀레스, 라파엘 나달에 이르는 다른 테니스 영웅의 그것과 공통점이 많다. 또한 조코비치의 성공 스토리는 그의 부모인 아버지 스르잔과 어머니 디야나의 가족사이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이 테니스 선수로 대성하기를 기대하며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는 평생 저축한 돈을 비우량주에 투자한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페더러를 이긴 나달과 나달을 이긴 조코비치의 세상이 계속 이어진다면 황금시대라는 말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에 다시 새롭게 등장한 페더러가 있었기에 트로이카(삼두마차)의 황금시대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나이 서른 줄에 들어선 페더러는 최근 몇년간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져 갈 뿐’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이 노병은 최근 다시 살아 꿈틀거렸다. 페더러는 이달 초 지상 최고의 테니스 잔치인 윔블던에서 우승함으로써 건재를 만천하에 알렸다. 조코비치의 세계 1위라는 1년간 영화를 일장춘몽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페더러였다.
나달은 단식 ‘금’ 조코비치 ‘동’
페더러는 복식 ‘금’을 따냈다 2012년 런던에선?
나달이 부상으로 출전 포기
두 명의 승패에 따라
1위 굳히기냐 탈환이냐 갈림길 런던올림픽, 1위 굳히기냐 탈환이냐 처음 정(正) 페더러가 반(反) 나달에게, 그리고 합(合) 조코비치로 변화된 세계 남자테니스는 다시 조코비치가 정이 되고 페더러가 반이 되어 좀체 끝날 것 같지 않은 승부로 이어지고 있다. 페더러는 나달이 있기에 더욱 높은 자리에 우뚝 섰고, 나달은 페더러가 있기에 빛을 발했다. 조코비치는 페더러와 나달이 있기에 더욱 귀하고 값진 존재로 여겨졌다. 이들의 치열한 승부는 결국 런던올림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8년간 세계 테니스의 트로이카(삼두마차)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올해 런던올림픽에 나란히 출전했다. 이들의 역대 올림픽 성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페더러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08년 베이징에 이어 올해 런던올림픽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 올림픽만 4번을 치르게 됐다. 최고 성적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복식 금메달. 2004, 2008년 올림픽에 출전한 나달은 2008년 단식 금메달을 따냈다. 반면 조코비치는 지난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에서 나달에게 패한 뒤 3~4위전에서 다른 선수를 이겨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까? 일단 단식 예상 대진표상 1번 시드 페더러(세계 1위)와 2번 시드 조코비치(2위)는 결승 이전에는 맞붙지 않는다. 조코비치는 3번 시드(세계 3위) 라파엘 나달과 준결승전에서 만나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나달-조코비치 준결승전을 다시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세계 랭킹 1~2위 순위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페더러가 금메달을 획득하면 랭킹 점수 750점을 보태 1위를 당분간 굳히게 되고, 조코비치가 우승하면 페더러를 제치고 다시 랭킹 1위가 된다. 변수가 많은 올림픽에서 둘 다 초반 탈락하고 나달이 2연패에 성공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나달이 다른 두 선수와 보이는 랭킹포인트의 차이 탓에 순위에는 변동이 없다. 세번째 올림픽에 출전하는 나달은 “올림픽은 가장 중요한 대회”라며 “스포츠 선수로서 올림픽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은 가장 특별한 일이고 나에게 이 경험은 아주 소중하다”고 말했다.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승부를 예고한 것이다. 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 등 테니스 영웅의 불꽃튀는 경쟁은 기수 자리를 놓고 이미 시작됐다.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세 선수 가운데 조코비치와 나달은 자국 선수단을 대표하는 기수를 맡아 개막식에서 각각 세르비아와 스페인의 국기를 드는 영예를 안았다. 페더러는 이미 두 차례나 기수를 맡아 다른 선수에게 양보를 했다. 테니스의 클래식인 2012 윔블던이 끝난 지 20일 만에 같은 잔디코트에서 올림픽 메달 색깔을 놓고 다시 열리는 세 선수의 승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박원식 테니스피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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