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70·사진). 손가락만으로 커서를 조작해 문장을 만들면, 신시사이저가 의미를 전달한다. 얼굴 근육마저 굳어버린 장애인 호킹의 머리에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유로운 메시지가 분출한다. “발밑을 보지 말고 눈을 들어 별을 보라. 호기심을 가져라.”
30일 새벽(한국시각) 영국 런던 주경기장에서 개막한 2012 런던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은 호킹 박사의 깜짝 등장으로 8만 관객과 세계인에게 감동을 안겼다. <비비시>(BBC) 등 외신은 화려하게 펼쳐진 개막공연이 과학과 휴머니티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계몽’(Enlightenment)이란 주제로 열린 공연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의 여주인공인 미란다와 서적, 뉴턴의 만유인력 사과, 태양열과 거대한 입자가속기 등 영국 문화의 자존심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사실들이 표현됐다. 73명의 시각·청각·지체장애인을 포함해 각 대륙에서 모인 3250명의 연기자는 우산을 들고 ‘입자’로 변신해 주경기장을 누볐다.
천체 조형물이 무대 한가운데에 있던 거대한 우산 조형물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빅뱅이 펼쳐진 것은 블랙홀 연구 등 우주 기원을 풀기 위한 천재 물리학자 호킹의 도전정신을 연상시켰다. 호킹 박사는 개막연설에서 “인간은 모두 다르고 ‘표준’은 없다. 하지만 누구나 ‘인간정신’이 있다”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또 “최근 힉스 입자의 발견은 인간 노력의 성과이고, 이는 우리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패럴림픽도 세상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막식을 본 국내 누리꾼들은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났다”는 반응과 함께 “패럴림픽 개막식에 호킹 박사를 등장시킨 것은 훌륭한 기획이었다”, “패럴림픽의 목표를 잘 살린 개막식이었다”고 평가했다.
참가 선수들은 비장애인 올림픽 개막식과 달리 개막공연 이전에 입장을 마쳐 무대에서 공연을 함께 즐겼다. 각 나라 선수단 맨 앞에서 선수단을 이끈 여성 자원봉사자들은 해당 국가의 국기 무늬로 만든 원피스를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88명의 선수를 파견한 한국은 기수 김규대(휠체어육상) 선수를 앞세워 123번째로 입장했고, 사상 처음 출전한 북한은 체코에 이어 40번째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첫 입장은 고대 올림픽 발상지 그리스가 아니라 알파벳 순서가 가장 빠른 아프가니스탄이었다.
1960년 로마장애인올림픽에서 영국 최초로 금메달을 딴 마거릿 몬이 성화 최종주자로 나서 꽃봉오리 모양의 성화에 불을 붙였다. 장애인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166개 참가국 수와 똑같은 166개의 꽃잎이 하나로 뭉쳐진 성화는 폐막일인 9월10일까지 12일 동안 타오른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