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드래프트에서 탈락하거나 프로구단에서 방출된 선수 등이 1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고양 원더스 구장에서 타격 테스트를 받고 있다. 고양/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양 원더스 선수 선발 현장
“나가라” 통보에 쪼개진 꿈
방황하면서도 야구 미련 못떨쳐
마지막 기회 잡으려 투지 불살라
“나가라” 통보에 쪼개진 꿈
방황하면서도 야구 미련 못떨쳐
마지막 기회 잡으려 투지 불살라
“나가라.”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세 글자에 하늘이 무너졌다. “나, 나가래.” 옆에 있던 친구에게 되새김질하는 순간 눈물을 쏟았다. 그제야 실감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해온 야구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송진우(현 한화 코치) 선수처럼 장수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깨져버릴지도 모르는 현실이. 믿을 수 없었다. 충암고 시절 봉황기대회에서 타자 열 명을 연속 삼진 처리하는 기록까지 세운 유망주였다. 부진했지만 잘릴 정도는 아니라고 부정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방출됐다.’ 2007년 당시 롯데 2군 박세진(24)의 야구 인생도 그날로 끝났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다시 꿈을 꾼다. 롯데 방출 이후 바로 에스케이(SK)로 이적했지만 팔꿈치 수술로 몇 달 만에 그만둔 뒤 입대했다. 야구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 방황할수록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만 커졌다. 당시 2군에서 함께 뛰던 친구 손아섭(롯데)의 활약도 자극이 됐다. 그는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고 싶다”며 두 눈을 부릅떴다.
17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있은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2회 트라이아웃(공개 선수선발) 현장에는 103명의 박세진이 있었다. 고양 원더스는 지난주 고교·대학 졸업자 중 감독 추천을 받은 80명을 상대로 1차 트라이아웃을 실시했고, 17~19일에는 6년 이상 선수 출신 103명을 대상으로 2차 트라이아웃을 진행한다. 대부분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야구를 그만둔 뒤 재기를 꿈꾸며 모였다. 프로구단에 입단했다가 부상, 부진 등의 이유로 방출된 선수도 16명이나 됐다. 고양 원더스 김광수 수석코치는 “모두 야구에 대한 미련 때문에 마지막 기회를 한 번 더 갖고 싶은 간절함으로 지원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은 나이도, 거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이시몬(29)은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려고 이날 오전 5시에 태평양을 건너왔다. 그는 2007년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한 시즌을 보냈지만 방출됐다. 일본 조사이대 투수인 동포 안휘권(21)은 일본에서 왔다. 지원자 중 최고령인 서른세살 유병목은 2002년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 입단했지만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이날은 태풍 때문에 실내에서 가능한 스트레칭과 캐치볼로 몸을 푼 뒤 50m 달리기(투수, 포수)와 수비(야수) 부문을 측정했다. 이시몬은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50m를 6초67에 끊었다. 곽채진 투수코치는 “지원자들의 수준이 지난해보다 향상됐다”며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양대 3학년 때인 2010년 눈 부상으로 왼쪽 시력이 나빠져 야구를 그만둔 이준영(25)은 올 2월부터 7개월간 고양 원더스 테스트를 준비했다.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 1월 제대하자마자 야구를 그만둔 지 2년여 만에 공을 잡았다”며 “느낌은 좋다”고 웃었다.
신상민 커뮤니케이션팀장은 “다음달 일반인 대상 3차 트라이아웃까지 합하면 지원자는 지난해와 비슷한 400여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수 출신 지원자만 200명에 이르는 등 체감온도는 지난해보다 뜨겁다. 또 프로 구단 입단 테스트를 두루 거치는 게 아닌 오직 고양 원더스에서 새출발을 하고 싶어 지원한 이들이 많아졌다. 2007년 삼성 2군에 입단했다가 2010년 방출된 송주호(24)는 “당장 프로에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번 실패도 맛봤으니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고양 원더스에서 다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준영은 “프로는 미리 찍어둔 선수가 있기도 한데 이곳은 그런 게 없다. 무소속 선수들이 많이 오니 자기만 잘하면 똑같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종 목표는 프로구단 입단이다. 지난해 트라이아웃으로 고양 원더스에 입단한 안태영(넥센), 김영관(엘지), 홍재용(두산)이 올해 프로구단에 가면서 기대감이 커졌다. 프로구단에 지명되지 못해 홍익대를 졸업하고 입대한 뒤 3월 전역한 김선민(25)은 “고양 원더스에서도 프로선수를 배출하니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됐다”며 “프로구단에 가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박세진은 “그러나 프로에 가겠다는 목표보다 1년을 하더라도 내가 누군지 알려주고 떠나고 싶다”며 선수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도 내비쳤다.
결과는 1, 2차와 3차 트라이아웃을 종합해 통보한다. 벼랑 끝, 제2의 기회를 잡을 이는 누굴까.
고양/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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